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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영상의 묘미를 찾아서 2024.04.16 1336
기록영상의 묘미를 찾아서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속 체제 선전 희귀 영상을 공개해 

글: 김기호(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정보데이터베이스(KMDb.or.kr)에는 ‘컬렉션’ 메뉴가 있다. ‘컬렉션’은 여기저기 건조하게 흩어져 있는 영화 정보들을 잘 꿰매어 놓은 큐레이션 같은 것이다. 이 ‘컬렉션’ 메뉴에서는 기증받은 자료들의 묶음을 한 번에 두루 살피거나, 잡지, 전단지, 공문서 등 디지털 원문을 들춰보거나, 영화와 관련해서 살아온 분들의 구술 증언을 PDF로 읽거나, 특정 주제와 관련한 자료 모음과 설명을 보거나 할 수 있다. 컬렉션 콘텐츠들이 공개되기 시작한 지는 의외로 얼마 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 추가될 거라 자주 들러달라. 

그 한 켠에 기록영상 컬렉션이 있다. 지금은 ‘노르베르트 베버 필름 컬렉션’과 ‘1950년 이전 조선, 한국 관련 기록영상 컬렉션’ 두 가지가 공개됐다. 올해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아카이브(National Archives) 2관 등 미국 몇 개 기관에서 수집한 1940~1970년대 한국 관련 기록영상 컬렉션을 추가할 예정이다. 작정하고 필름에서 직접 고화질 스캔한 영상들이라, 필름에서 비디오를 거쳐 동영상으로 변환에 재변환을 거쳤던 기존의 통상적인 기록영상 화질보다는 훨씬 쾌적할 것이다. 2022년에 수집한 98편은 빠르면 5월 중에, 2023년에 수집한 125편은 연말 즈음에 공개한다는 목표로 준비 중인데, 아직 정리가 많이 진척되지 않아 순조롭게 공개 일정을 맞출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1차로 선보일 2022년 수집 영상들은 뉴스릴, 다큐멘터리, 미편집 푸티지 등의 형태로 대부분 미군이 선전 목적으로 촬영했거나 한국전쟁 당시 평양 등지에서 노획한 ‘적국’(북한, 소련, 중국, 일본)의 선전용 필름들이다. 이 자료들을 통해 2차 세계 대전,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이미 소련과 미국의 이념 대립이 얼마나 격화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미국과 ‘적국’들은 모두 한국전쟁 이전부터 체제 선전용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영상 제작에 경쟁적으로 심혈을 기울였고, 심지어 문건 기록에 따르면 애초에 전쟁 중 북한 자료를 노획하기 위해 기획한 ‘평양특별프로젝트’의 목적 중 하나도 역 선전을 위한 자료영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상대 진영의 선전 필름을 가져와 상대를 공격하는 영상으로 탈바꿈하는 ‘악마의 편집’을 통해, 기록영상은 그가 누구든 가진 자의 무기가 될 수 있었다. 

그 오랜 냉전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앞서 언급한 노획필름 중 공산권 국가가 제작한 영상들은 사실상 국내에서 ‘특수자료’로 분류되고 연구목적 외에는 일반에 공개할 수 없다. 그래서 공개할 자료 중 31%를 차지하는 노획필름자료는 VOD 영상 없이 소개 및 연구 정보만 제공될 예정이다. 나머지 영상들은 미군의 작전수행이나 훈련 등 각종 군사 활동, 군부대의 일상, (연출됐을 가능성이 있는) 전쟁 장면, 판문점의 풍경, 정전회담, 전쟁포로 수용소, 포로 교환 작전, 전후 한국 재건 활동 등을 다루고 있다. 실은, 연구자나 역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기록영상 중에서도 가장 진입 문턱이 높게 느껴질 만한 부류일 거다. 영상 자체보다는 영상이 기록된 과정이 더 흥미롭다.

하지만 기록영상의 묘미는 보이는 장면 이면의 맥락을 찾아내고 상상 속에서 재구성하는 데에 있으니, 이 재미를 아는 분이라면 한번 도전해 달라. 아무리 건조해 보이는 영상이라도 무심하게 툭툭 던져진 키워드 하나하나가 추리 여정의 입구가 될 것이다. 여러분 앞에는 우리 원의 KMDb와 기록영상 컬렉션, 국사편찬위원회와 국립중앙도서관의 각종 사료 및 안내들, 웹 지도 서비스들, 집단지성으로 작성된 위키, 그리고 근현대사 마니아들의 각종 블로그와 유튜브가 펼쳐져 있다. 여기저기 지뢰처럼 박혀 있는 틀린 정보만 잘 피해 다닌다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 拓け滿州(만주개척) > (local ID : 242-MID-6027)
▶ 미군이 노획한 필름으로서, 만주의 농경지 개척을 위해 일본인들의 만주 이민을 독려하는 내용으로 일본이 1939년에 제작한 선전 영상. 이 장면의 ‘만주농업이민입식도’는 만주 각 지역에 4차에 걸쳐 이민이 진행됐음을 보여준다. 

 
GUN CAMERA FOOTAGE (Korea) > (local ID : 428-NPC-13233)
▶ 한국전쟁 중 미 공군 전투기가 소련제 미그 15기와 공중전을 벌이고 격추시키는 영상. 원 소장처에 따르면 1950년 12월 8일에 촬영됐으며, 훈련이나 작전 장면을 기록할 목적으로 전투기에 장착하던 ‘건 카메라’로 촬영한 16mm 영상이다. 한국전쟁은 인류 역사상 전투기끼리 공중전을 벌인 첫 전쟁으로서, 기록에 전하는 첫 공중전은 압록강 근처에서 1950년 11월 8일에 벌어졌고 미국이 패했다.


 
Documentary film on Inchon replacement depot, Inchon, Korea(한국 인천의 보충대에 관한 기록영상) > (local ID : 111-LC-37618)
▶ 1955년 2월 25일, 3월 5일에 인천 애스컴 시티(ASCOM City)의 이모저모를 미 육군 통신대가 기록한 영상. 애스컴 시티는 해방 후 건설됐던 ASCOM24(Army Service Command XXIV, 제24군수지원사령부)에 이후 캠프마켓 등 다수의 미군부대가 모여 형성된 군사기지였다. 그 이전에는 1939년 즈음부터 일제가 조선인 노동자를 강제동원하여 무기를 만들던 인천 육군조병창과 미쓰비시 제강 등 일본 군수공장이 있던 부지이다. 2019년 주한미군으로부터 반환됐고, 최근에는 조병창 병원 등 일부 건물의 철거와 관련해 논란이 있었다.


 
EPIDEMIC CONTROL Ullung-Do, Korea(한국 울릉도의 전염병 통제) > (local ID : 428-NPC-16126)
▶ 한국전쟁기 중인 1952년 7월 7일에서 8일에 미 해군이 울릉도에 상륙, 주민들의 전염병 예방 접종 및 소독을 실시하는 광경을 기록한 영상. 비록 한국전쟁기의 전염병 피해가 전력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부각되기도 했으나, 장소가 울릉도인 점과 연출의 흐름을 볼 때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으리라고 판단됨.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유 중인 영상을 고화질로 재수집.


 
SP-1 PRISONERS OF WAR, PUSAN, KOREA(SP-1: 한국 부산의 전쟁포로) > (local ID : 111-LC-29199)
▶ 미국 극동사령부 특별 프로젝트-1(SP-1)로 미 육군 통신대가 1951년 2월 16일에 부산 제1포로수용소에서 촬영한 푸티지. POW(Prisoner of War, 전쟁포로)라고 적힌 상의를 입은 포로들이 권투 경기를 하고 있다. 둘러싼 이들은 신이 나다가도 침울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미군은 반공/친공을 막론하고 전쟁포로들을 인도주의적으로 대우하고 있다는 인상을 영상을 통해 전파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