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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est KOREAN Films of All Time 2024.05.29 2862
The Greatest KOREAN Films of All Time 
학예연구팀 정종화 팀장과 윤서연 연구원이 밝히는 "한국영화 100선 선정" 뒷이야기

글 : 박수용(씨네21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씨네21 사진기자) 


*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정종화 팀장(우), 윤서연 연구원(좌)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한국영화 열편은 무엇인가요?”
영화를 좋아한다면 누구나 한 번쯤 스스로 던져봤을 질문에 한국영화계가 직접 답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상자료원’)이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한국영화사를 대표하는 100편의 작품을 선정했다. 지난 2006년과 2014년에 선정된 목록들과 비교해 굵직한 변화들이 눈에 들어온다. 2000년대 한국영화의 약진이 낳은 풍요로운 수확과 더불어, 지난 100여년간의 궤적을 조망하는 오늘날 한국영화계의 관점을 증언할 하나의 역사적 사료로서 한국영화 100선의 가치를 재확인한다.
<아카이뷰>는 2024년 한국영화 100선의 선정 작업을 총괄한 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의 정종화 팀장과 윤서연 연구원의 대담을 전한다. 영화사 연구자인 정종화 팀장과 한국현대영화 담론에 관심이 많은 윤서연 연구원은 서로의 연구 분야를 상호 보완해 가며 균형 잡힌 역사화 작업을 진행했다. 100선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고민부터 선정 과정에서의 여러 에피소드까지, 한국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는 사가로 활약한 이들의 노고와 통찰이 이 목록을 이해하고 또 독자 자신만의 100선으로 나아가는 창조적 독해의 과정을 도와줄 것이다.




2006년과 2014년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영화 100선을 선정하게 되었다. 영상자료원이 한국영화 100선 선정을 처음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정종화 학예연구팀장 (이하 "정종화") : 2006년 100선 선정을 처음 시작한 계기는 2000년대 중반의 한국영화 르네상스와도 관련이 있다. 산업의 융성과 함께 영화 교육 및 연구를 위한 영화계의 움직임이 활성화되는 시기였고, 이와 맞물려 영상자료원도 2003년 1월에 지금 학예연구팀의 전신인 영화사연구팀을 신설했다. 한국영화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던 당시 국내외 영화 연구자와 대중에게 한국영화를 소개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고안한 것이 바로 100선이었다.
윤서연 학예연구팀 연구원 (이하 "윤서연") : 디지털 복원 및 DVD 발매 등 영상자료원이 보유한 자료를 이용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때 영상자료원 내부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 또한 중요한 목적이었다. 실제로 2014년 재선정한 목록은 한국영화박물관의 상설 전시,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KoreanFilm) 큐레이션 등에도 공신력을 더하는 가이드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2014년의 100선에 비해 2024년 100선의 방향성이 변화한 부분이 있을까.
정종화 : 2014년의 리스트가 한국 고전영화의 보존 가치를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작업이었다면, 이후 이 영화들의 가치를 국민들께 알리는 작업을 이어가며 더욱 대중 친화적인 콘텐츠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 지점에서 최대한 많은 인원이 선정인단으로 참가했으면 좋겠다는 김홍준 원장의 가이드가 주효했다. 조사를 진행하는 실무진은 힘들었지만 그 결과 2014년 대비 네 배 가까운 인원인 총 240명으로부터 응답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방대한 조사 작업을 함께 해준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화이론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정석영 선생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더욱 선명한 콘텐츠화를 위한 또 다른 노력은 ‘보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의 두 별도 트랙이다. 영국영화협회(BFI)에서 주관하는 ‘역대 최고 영화’(The Greatest Films of All Time)가 비평가와 영화감독의 응답을 나누어 집계하는 데에서 영감을 얻었다. 여기서 창작자의 개념을 더욱 확장해 프로듀서, 촬영감독, 배급사 등 영화산업을 아우르는 ‘만드는 사람’의 100선과 비평가, 연구자 등 ‘보는 사람’의 100선을 별도로 집계했다.
윤서연 : 대중적인 시선을 확보하기 위해 꼭 영화인이 아니더라도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인사들의 답변을 함께 청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연구자와 창작자의 시선에 큰 차이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뒤에서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생각보다 분명한 차이가 가시화되었다.

작품의 선정 방식과 기준에서도 차이가 있었나.
정종화 : 우선 각 응답자가 추천하는 작품의 수에 변화를 주었다. 2014년에는 자료원이 보유한 모든 필름의 목록을 공유한 후 그중 100편을 선정해 주십사 했지만, 이번에는 목록 제공 없이 현존하는 모든 한국영화 중 딱 10편만 골라 주시길 부탁드렸다. 줄어든 선택지를 통해 더욱 변별력 있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윤서연 : 응답자에게 가이드 목적으로 제공한 선정 기준에도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 한국영화사의 대표성, 역사·문화적 가치, 장르적·예술적 완성도 등의 기준은 2014년과 동일하다. 하지만 이번에 추가로 강조한 기준은 ‘당시 평단이나 대중으로부터 주목받지 않았더라도 발굴과 재평가가 필요한 작품’, ‘인권 감수성이나 소수자 문제 등의 사회적 이슈가 반영된 작품’이다. 분명 현대 영화계에서 중요한 평가의 척도로 자리잡은 요소다.

새로운 10년, 새로운 100선

정종화 팀장은 지난 2014년의 100선에도 선정위원으로 참여했다. 100편에서 10편으로 줄어든 선택지를 실제로 눈앞에 둔 심정이 어땠는지 듣고 싶다. 이번 선정에 참여한 여러 선정위원의 반응도 궁금하다. 
정종화 : 내가 먼저 10개씩만 뽑자고 과감하게 주장했지만, 결국 그 덫에 내가 걸린 꼴이다.(웃음) 원로 감독님들을 무슨 낯으로 봬야 하나 싶은 고민까지 하게 되더라. 참여해 주신 응답자분들께도 심심한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 만큼 힘든 작업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응답자는 원로 영화사가 김종원 선생님과 1963년 최초의 한국영화사 도서를 집필하신 노만 선생님이다. 이분들께 설문지를 구글 폼으로 전달드릴 수는 없으니 종이로 출력해 직접 찾아뵈어 부탁드렸다. 한 달 뒤에 다시 찾아뵀더니 여전히 고민 중이시라고 하시더라. 결국 두 분이 마주 앉아 두 시간 넘게 고민하신 끝에 그 자리에서 작성하신 10선을 받아왔다. 워낙 아시는 작품이 많으시다 보니, 그 중 중요한 작품들을 떠올리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기도 했다. “1970년대에 무슨 영화가 있었지?” 하고 여쭤보시면 “<별들의 고향>(이장호, 1974)이요?” 하고 말씀드리고.(웃음)
윤서연 : 마찬가지로 한국 고전영화의 산증인들께서 선정한 작품들이 하나같이 인상적이었다. 인천 미림극장의 최현준 대표님께 설문 부탁을 드렸을 때, 미림극장에서 오랜 기간 영사기사로 근무하시고 현재는 고문을 맡고 계신 조점용 기사님도 선정에 참여하고 싶어 하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재밌는 점은 조점용 기사님께서 꼽으신 열 편이 우리 또래 세대가 꼽을 만한 작품과는 결이 다른, 정말 같은 한국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독창적인 시각을 견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10선을 뽑아달라고 했을 때 선정위원 중에서는 정전을 꼽은 분들도 있고, 자기 취향을 밀어붙인 분들도 계신다. 두 기준을 절충하여 8편 정도는 정전, 2편은 자기 취향을 꼽으신 경우도 있는데, 이 부분을 결정하는 것 또한 응답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설문 참여를 요청드린 감독님들 중에서는 자신이 연출한 영화를 개별 10선에 뽑는 분들도 계셨다. 자신이 연출한 작품을 베스트로 꼽은 것에 대해서 한국영화에 족적을 남겼다는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다. KMDb 사이트에 공개된 개별 10선을 찬찬히 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좌측부터 시계방향)<기생충>(봉준호, 2019),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 <헤어질 결심>(박찬욱, 2022), <올드보이>(박찬욱, 2003) 

2014년에 비해 2024년의 결과에는 여러 흥미로운 변화가 감지된다. 올해의 100선에서 전반적으로 어떤 패턴을 발견할 수 있을까.
정종화 : 우선 2000년 이후 작품이 2014년 목록에는 17편, 이번 목록에는 39편 포함되었다. 설문 대상연도가 늘어났음을 감안하더라도 21세기 영화의 비중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창작자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 선택지를 10작품으로 압축한 것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전영화에 대한 지지 또한 확실히 줄었다. 1940-60년대 영화가 2014년 목록에는 34편, 이번 목록에는 16편이다.
윤서연 : 다만 2014년의 100편 중 총 63편이 이번 목록에 그대로 남아있다. 겉보기에는 많이 바뀐 것 같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존 정전으로 인정받던 작품 중 정수만을 남기기 위해 응답자들이 신중하게 고민한 결과로 본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사실은 지지도의 감소세와는 별개로 여전히 고전영화에 대한 적극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카페 크리틱》, 《마테리알》, 《프리즘오브》 등의 매체에서 활동하는 젊은 평론가들은 거장들의 작품세계 중 상당히 의외의 작품을 호명했다. 이만희의 <태양닮은 소녀>(1974)라든가, 임권택의 <개벽>(1991) 같은. 자신만의 취향과 식견을 가지고 고전영화를 해석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이번 목록에 꼽힌 여성 감독의 작품 수도 고무적이다. 2014년 목록에서는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 1편이었다면 이번 목록에는 총 9편이다. 특히 정주리, 윤가은, 김보라 등의 감독이 2010년대에 걸쳐 전개한 여성 서사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가 눈에 띈다.

정전을 재해석하고 동시대성에 감응하다

* (좌측부터)2014년 한국영화 100선 공동 1위였던 <하녀>(김기영, 1960), <오발탄>(유현목, 1961),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최다 득표 10개 작품도 상당히 젊어졌다. 이번 목록의 최다 득표 10선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윤서연 : 사실 <헤어질 결심>(박찬욱, 2022)이 이렇게 표를 많이 받을지 몰랐다. 아무리 영화가 뛰어나더라도 정전의 영역에 들려면 일정량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많은 응답자가 <헤어질 결심>을 자신 있게 꼽았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정종화 : 2014년의 공동 1위였던 <하녀>(김기영, 1960), <오발탄>(유현목, 1961),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은 여전히 10선 안에 자리 잡았다. 결국 핵심 정전의 가치는 모두에게 분명히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고전영화의 전반적 비중 감소라는 현상이 영상자료원에 어떠한 시대적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전영화의 가치, 더불어 김기영과 이만희 등의 스타 감독 외에 더욱 많은 감독들의 가치를 발굴하고 널리 알려야겠다는 목표를 재확인한다.



‘보는 사람’ 트랙과 ‘만드는 사람’ 트랙의 목록 사이에도 많은 차이점이 보인다. 특히 창작자인 ‘만드는 사람’ 트랙의 경우 동시대에 영향을 주고받은 90년대 이후 영화들에 대한 지지도가 더 높지 않았나 싶은데.
윤서연 : 각 트랙의 상위 10선만 비교해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제작자의 입장에서 훌륭한 영화와 연구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영화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평론가들은 여성이나 이주 노동자, 사회적 약자를 다루는 영화에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고, 한국 최초 장편 애니메이션인 <홍길동>(신동헌, 1967) 등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에도 표를 주었다. 창작자들은 특히 90년대 이후로 한국영화의 주류로 자리 잡은 역사물이나 누아르, 스릴러 등의 장르영화에 더욱 후한 평가를 주는 경향이 발견된다.
더불어 짚고 넘어가고 싶은 장르가 한국 다큐멘터리의 주류라 부를 수 있는 액티비즘 독립 다큐멘터리다. 이 계보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상계동 올림픽>(김동원, 1988)은 러닝타임이 27분 분량이어서 장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지만, 많은 분들의 지지를 받아 목록에 포함할 수밖에 없었다. 김동원에서 시작되었던 독립 다큐멘터리가 이강현, 김일란 등의 감독들에 의해 계승되는 흐름을 100선 내에서 주목해 볼 만하다.

시대를 증언하는 문화유산, 한국영화


* 한국영상자료원 학예연구팀 정종화 팀장(좌), 윤서연 연구원(우)

마지막으로, 2024년의 영화적 시대를 향유하는 관객과 애호가들이 한국영화 100선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활용했으면 좋겠는지 간단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면.
윤서연 : 절대적인 답은 없겠지만, 한국영화는 어찌 보면 폭력의 역사라 생각한다. 과거의 영화 속에는 분명 과한 선정성이나 혐오를 내재한 구시대적 표현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교육 목적의 활용성 또한 높다. 예를 들어 도시연구자 김영준 선생님의 경우 중학교 때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오발탄> 속 전후 도시의 모습에 감명을 받아 지금의 진로를 선택했다고 한다. 꼭 영화가 인생을 바꾸지 않더라도, 한국영화를 마주함으로써 한국 근현대사를 무겁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참고할 수 있는 대중적 가이드로서 100선이 활용되기를 희망해 본다.
정종화 : 한국영화 100선을 통해 한국영화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국민적 인식이 확대되었으면 한다. 영화라는 매체는 풍부한 역사적 텍스트일 뿐만 아니라 당대 한국 사회의 문화예술적 측면의 최대치를 투영한 결과물이다. 현재도 일부 작품들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해당 영화가 담긴 필름이라는 물질 자체만이 인정을 받는 형국이다. 영화라는 종합예술 자체가 지켜 나가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국민적 공감대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영상자료원의 다음 목표는 한국영화를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이다. 많은 응원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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