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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의 한중간, 한국영화의 나이테를 더듬다 | 2024.06.20 | 8975 |
2020년대의 한중간, 한국영화의 나이테를 더듬다
‘2024년 한국영화 100선’ 둘러싼 김홍준·봉준호·윤가은 대담 글 : 남선우(씨네21) 사진 : 최성열(씨네21 사진기자) * (좌측부터) 김홍준 원장, 봉준호 감독, 윤가은 감독
최고를 꼽는 건 언제나 곤란한 일이지만 그만큼 재미난 이야깃거리도 없다.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이 ‘2024년 한국영화 100선’을 발표한 지도 어느덧 한 달. 그사이 순위가 공개된 상위 10선을 필두로 한 240인의 선택이 뉴스를 장식했고, 많은 영화광들의 SNS에 목록이 공유됐다. 리스트는 또 다른 리스트를 낳는 법. 공감과 반론, 대세와 소신, 고전과 최신을 아우르는 그들 각자의 리스트가 여기저기서 돋아났다. ‘내가 사랑한 한국영화 말하기 챌린지’ 물결을 보는 듯했다. 이 흐름을 함께 타고자 100선 선정을 주관한 한국영상자료원 김홍준 원장과 100선에 이름을 올린 두 감독을 <아카이뷰>에 초대했다. <화녀>(1970)가 개봉할 때쯤 돌을 맞았다는 봉준호 감독과 <꼬방동네 사람들>(1982)과 같은 해에 태어난 윤가은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클래식이 된 영화들과 나란히 숨 쉬기 시작해 자기 작품을 새 시대의 명작으로 빚은 두 감독은 김홍준 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한국영화의 나이테’를 매만졌다. 그들의 지문이 새겨진, 그들만의 취향이 묻어난 리스트도 여럿 탄생했다. 참고로 세 영화인은 앞서 선정 위원 240인에 포함되지 않았기에 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한국영화가 무엇인지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대담을 읽으며 나만의 리스트 만들기에 동참하시길. 그렇게 한국영화의 어제를 기억하고, 내일을 응원해주시길. 지난 5월 31일 ‘영화인 240명이 선정한 역대 최고 한국영화 100편’의 목록이 공개됐다. 이 리스트로부터 받은 첫 인상이 궁금하다. 김홍준 : 원장으로서 100선 선정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부터 말씀드리고 싶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존재를 더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왔는데, 2014년에 이어 10년 주기로 새롭게 100선을 꼽아보고자 2년 전부터 준비했다.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베스트 10 순위도 매겼다. 이를 많은 언론이 보도하면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 같아 기쁘다. 물론 이런 기획은 <씨네21>이나 서울아트시네마도 할 수 있지만 영자원은 영상 자료를 직접 관리·연구·복원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고전을 복원함에 있어서도 이 리스트가 중요한 기준이 되어줄 것이다. 더불어 한국영화에 대한 비평적 담론이 줄어든 시대에 이 리스트가 차세대 연구자들을 자극하길 바란다. 리스트를 둔 갑론을박도 기대했는데, 조금씩 벌어지고 있어 재밌다. 영자원 홈페이지에 개인별 리스트가 공개돼있고, <아카이브 프리즘>으로도 100선을 조명할 예정이다. 여러 경로로써 논쟁의 출발점을 만들었으니 남은 건 관객의 몫이 아닐까 싶다. 봉준호 : 순위를 보는 것도 재밌지만, 리스트의 장점은 내가 못 봤던 영화를 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제목도 몰랐던 영화가 중요하다고 언급되면 궁금하지 않겠나. 작품의 중요도를 떠나더라도 이 리스트엔 지금의 젊은 관객들이 재밌게 볼 법한 영화들이 너무 많다. 넷플릭스나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KoreanFilm)에서 고화질로 감상 가능한 작품들도 있으니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 김홍준 : 100선 중 3분의 1은 한국고전영화 채널에서 볼 수 있다. 연도별 재생 목록도 만들어뒀다. 봉준호 : 윤가은 감독의 소감도 궁금하다. <꼬방동네 사람들>(1982)이 개봉할 때 태어났는데 <우리들>(2016)로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나는 <화녀>(1970)가 개봉했을 때쯤 돌잔치를 하고 있었을 거다. (웃음) 히치콕의 <현기증>(1958)에 나이테를 보며 시간의 흐름을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리스트가 딱 그런 느낌을 준다. ‘한국영화의 나이테’같달까. 윤가은 : 2014년에도 한국영화 100선을 꼽았다는 걸 몰랐기에 이번에 본 100선 목록이 무척 새롭게 느껴진다. 알았으면 그 목록을 토대로 열심히 공부했을 텐데, 아직도 못 본 영화가 참 많다. 내가 한창 영화를 꿈꿀 시기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였기 때문에 동시대 영화를 보기에도 바빠서 고전을 챙기지 못했다. 이제야 조금씩 한국 고전을 찾아보고 있는 것 같다. * (좌측부터) 봉준호 감독, 윤가은 감독
“리스트의 장점은 내가 못 봤던 영화를 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봉준호 : 좋은 의미에서 신작과 옛 영화가 클래식의 자리를 두고 경쟁 중인 것 같다. 김홍준 : 그렇다. 이른바 ‘한국형 르네상스’로 불리는 21세기 초반 영화들이 100선 내에 부쩍 늘었고, 베스트 10 순위권에서도 21세기 영화들이 약진했다. 봉준호 : 그렇다면 100선에 아쉽게 들지 못한 101위 영화가 궁금해진다. 원장님은 아실 것 같아 여쭤본다. 김홍준 : 집계 결과 동률일 경우 오래된 영화를, 즉 더 긴 시간을 버틴 영화를 우선순위에 뒀다. 그러면서 공동 101등이라고 볼 수 있는 영화가 여럿 생겼다. 발표하자면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 <개벽>(1991),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나쁜 영화>(1997), <바람난 가족>(2003),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장화, 홍련>(2003), <황해>(2010), <부당거래>(2010),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 <1987>(2017), <소설가의 영화>(2022)가 있다. 홍상수 감독 작품 수가 많다보니 표가 분산된 경향이 있다. 봉준호 : 다작인데다 작품이 다 좋다보니 모두가 합심해서 한 작품을 밀지 않는 이상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100선에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강원도의 힘>(1998)만 올랐지만, 감독 언급 횟수만으로 집계하면 홍상수 감독이 아주 높은 순위를 차지할 것 같다. 우리끼리라도 홍상수 영화 탑 3를 꼽아보면 어떨까? 김홍준 : 출발을 알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밤의 해변에서 혼자>, <소설가의 영화>를 꼽겠다. 봉준호 : 나는 <북촌방향>(2011), <하하하>(2010), 그리고 최근작 중에서는 <소설가의 영화>가 찡했다. 윤가은 : <하하하>,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 시절의 홍상수 영화를 좋아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도 꼽지 않을 수 없다. 봉준호 : 역시 기념비적인 데뷔작이다. 홍상수 감독 작품만으로도 랭킹을 만들어 봐도 재밌을 것 같다. 한국형 르네상스라 불리는 21세기 초반 영화들이 100선에 늘었고, 베스트 10 순위권에서도 약진
봉준호 :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컬트 팬들이 많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의지’라는 단어가 잠꼬대로 나오게 될 거다. (웃음) 미국에서도 블루레이로 출시된, 너무나 재밌는 괴작이다. 그리고 <기쁜 우리 젊은 날>이 2014년도 순위에 없었다는 것도 의외다. 그사이 배창호 감독 회고전이나 블루레이 발매 같은 사건이 있었나. 김홍준 : 이번 설문은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을 나눠 진행했는데, 한국영화의 중추이자 중견이라 할 수 있는 50대 창작자들의 <기쁜 우리 젊은 날>에 대한 지지가 컸다고 본다. 10년 전에는 고전이라 생각하지 못하다가 지금은 고전으로 받아들이게 된 게 아닌가 싶다. * (좌측부터)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 2001),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1996)
그 외에도 100선에서 제목을 확인하고 유독 반가웠던 작품이 있나. 윤가은 :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작품부터는 대부분 극장에서 봤더라. 특히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2001)를 보고 충격을 크게 받았다. 영화관에서만 열 번을 봤다. 봉준호 : 영화가 품은 감수성 자체로부터 충격을 받은 건가. 윤가은 : 그렇다. 이제 막 20대로 접어드는 여성들을 이렇게까지 들여다보는 한국영화가 이전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 봉준호 : 윤가은 감독이 <우리들>을 만들기까지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친 작품이었을 것 같다. 윤가은 : 물론이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마치 현미경으로 찍은 영화 같았다. 이 작품을 통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일상을 소중하게 들여다보는 시선을 배웠다. 봉준호 : 윤가은 감독의 말을 들으며 연도순으로 목록을 빠르게 훑어보니 그 자체로 감수성의 역사가 아닌가 싶다. 시대별로 새로운 감수성이 등장하고, 신인들은 또 그 영향을 받아 자기 작품을 만들어온 흐름이 보인다. 나는 장준환, 허진호 감독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시사회에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셋 다 감독이 되기 전, 변변치 않던 시절이었는데, 모두 그 영화의 듣도 보도 못한 감수성과 연출 방식에 충격을 받았다. 셋이 모여 ‘내가 딱 이런 느낌의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한탄하며 마치 자기가 한발 늦었다는 식으로 얘기하며 소주를 마셨다. 사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영화였는데 말이다. 역시나 1990년대, 2000년대 작품이 각 20편, 24편으로 100선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봉준호 : <우리들>처럼 비교적 근작으로 여겨지는 영화들조차 내후년이면 10주년을 맞는다. 지금의 영화과 학생들도 모여서 윤가은 감독 작품을 분석하고 있지 않겠나. 나 또한 학교와 동아리에서 한창 영화를 탐색하던 시절에 본 1990년대 영화에 대한 애착이 많다. 장선우, 박광수, 이명세, 정지영 등 굵직한 이름들이 떠오른다. <우묵배미의 사랑>(1990)은 스무 번 넘게 보며 대사도 외우고 그랬다. <그들도 우리처럼>(1990)도 충격적이었다. 유영길 촬영감독의 훌륭한 촬영과 문성근 배우의 쓸쓸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취조 장면에서의 유퉁 배우도 연기를 무척 잘했다. <남부군>(1990)은 그 자체로 사회적인 이슈였다. 안성기 배우의 라스트 신을 보며 눈물이 맺히는 통렬함을 느꼈다. 그리고 DVD로 다시 본 <경마장 가는 길>(1991)에서 홍상수 작품 세계의 전조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리스트엔 없지만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도 아주 좋아한다. 내 영화를 찍고 싶은 열망이 가득했던 시기라 정말 눈의 실핏줄을 터뜨려가며 영화를 보던 시기다. 그래서 1990년대 영화 제목들을 보면 이렇게 애틋해진다. 윤가은 : 1980년대생인 우리 세대에게는 <살인의 추억>(2003)이 그런 영화다. 당시 영화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파다했고, 나 또한 보자마자 쇼크를 먹었다. 저런 영화가 세상에 나오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그때부터 영화적 완성도나 장르 영화에 대한 인식에 전환이 왔다. 그런데 요새 신기하다고 느끼는 건,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살인의 추억>을 고전으로 인식한다는 거다. 20년 전 영화이니 그럴만한데, 엊그제 <살인의 추억>을 처음 보고 온 학생들이 흥분해서 내게 감상을 들려주는 식이다. (웃음) 최근 가장 큰 충격 중 하나였다. 봉준호 : 그 영화를 서른넷에 찍었고, 작년이 20주년이었는데, 시간이 이렇게 빠른가 싶다! * (좌측부터 시계방향)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 <기생충>(봉준호, 2019), <괴물>(봉준호, 2006), <마더>(봉준호, 2009)
지금 MZ세대들에게 영화 <살인의 추억>은 고전?
봉준호 : 만든 영화의 절반이 100선에 들어갔다! 윤가은 : 나는 <우리들>을 아주 작은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응답자들이 이 영화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찾아주신 걸까 궁금해졌다. 나 또한 만든 사람으로써 그걸 다시금 고민해봤다. 무엇보다 이 리스트를 통해 내게 영향을 미친 여성 감독들을 많이 떠올렸다. 왜 이 작품이 목록에 없을까 아쉬워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나는 작품이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1998)이다. 봉준호 : <미키17>까지 총 8편의 장편영화를 찍었고, 그 중 7편이 개봉했는데, 리스트에 네 편이 포함됐으니 기쁘고 영광스럽다. 그런데 이 영화들이 2034년, 2044년에도 언급될 수 있을까? 시간의 물결 속에서 어느 정도를 버텨낼지 궁금하다. 세월이 지날수록 어딘가로 올라가는 영화들이 있는가 하면 세월 속에서 쓱 사라지는 영화도 있는데, 내 영화들의 운명은 어떨지 모르겠다. 모든 감독은 자기 작품이 클래식이 되길 바랄 테다. 그래서 더욱 10년 후, 20년 후가 궁금하다. 김홍준 : 그때는 드라마나 OTT 시리즈도 이 리스트에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워보기도 했다. 그렇게 된다는 가정 하에 어떤 작품을 꼽고 싶은지 질문했더니 <네 멋대로 해라>(2002), <비밀의 숲>(2017), <나의 아저씨>(2018), <킹덤> 시즌 1(2019), 시즌 2(2020), <오징어 게임>(2021), <나의 해방일지>(2022) 같은 제목들이 언급됐다. 두 분은 어떤 작품이 떠오르나. 봉준호 : 주찬옥 각본, 황인뢰 연출 콤비를 좋아했다. <천사의 선택>(1989)이 떠오른다. 신애라 배우의 데뷔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윤가은 : 최근에는 < D.P. > 시즌 1(2021), 시즌2(2023)를 재밌게 봤고, 오래 전부터 노희경 작가 작품이나 안판석 감독 작품을 좋아했다. <풍문으로 들었소>(2015)는 영화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봉준호 : 안판석 감독은 캐릭터 묘사가 정말 대단한 분이다. <서울의 달>(1994), <파랑새는 있다>(1997), <도둑의 딸>(2000) 등 주옥같은 작품을 참 많이 쓴 김운경 작가도 언급하고 싶다. 윤가은 : 이렇게 따져보니 리스트가 여러모로 확장될 수 있을 것 같다. 드라마만의 리스트를 따로 만들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헤어질 결심>(박찬욱, 2022)
한편 선정작 중 2020년대 개봉작은 <헤어질 결심>(2022)이 유일하다. 훗날 2020년대 한국영화는 얼마나 호명될 수 있을까. 주목하는 작품 혹은 창작자가 있는지 듣고 싶다. 윤가은 : <남매의 여름밤>(2020) 윤단비 감독,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2) 김세인 감독이 어떤 작품을 또 만들지 너무나 궁금하다. 최근에는 이 두 분의 차기작을 가장 기대하고 있다. 봉준호 : 나 또한 <남매의 여름밤>을 무척 좋아해서 일본판 블루레이까지 갖고 있다. 차기작이 기대된다. 나는 <소리도 없이>(2020)를 연출한 홍의정 감독 팬이기도 하다. 작품이 좋을 뿐더러 장르영화에 대한 접점도 있어 다음이 기대된다. 엄태화 감독은 이제 신인이라고 부르기는 애매하지만 여전히 젊은 감독으로서 기대가 크다.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를 아주 재밌게 봤다. 윤가은 : 이번 리스트를 보며 클래식이란 무엇일까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생각했다. 옛날에는 어떻게 이렇게 이상하고 새로운 영화가 계속해서 나왔을까, 왜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을까 고민했다. 우리 세대의 문제로 치부할 순 없을 텐데, 어떻게 하면 나도 용감하게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를 많이 생각해보게 됐다. 봉준호 : 새로운 재능은 꾸준히 등장하고, 오히려 지금 더 많아 보이기도 하는데, 산업이 그 재능을 얼마나 품고 갈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그런 포용력이 2000년대 초반에 비해 나빠진 게 아닐까. 과감하고 이상한 시도들이 멀쩡히 투자를 받고, 메인 스트림 근접한 곳에서 탄생했으니까. 그 시절의 활기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윤가은 : 이제 그런 시도는 독립영화 신에서밖에 못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이 리스트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마지막으로 <아카이뷰> 독자를 비롯한 관객은 이번 리스트를 어떻게 소화했으면 하나. 봉준호 : 마치 도장 깨기 하듯 제목을 한 편씩 선으로 그어가며 영화를 보셨으면 한다.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채널에서도 좋은 화질로 보실 수 있지만, 영자원에 오셔서 큰 스크린으로 감상한다면 더욱 좋겠다. 미술관의 상설 전시 코너처럼 이 리스트의 작품들을 항시적으로 상영하는 기획전이 있으면 어떨까? 예를 들어 일주일 중 하루는 100선 작품만 상영한다든지. 김홍준 : 그렇게 1년 내내 극장에 오신 분들은 어느새 100편을 다 볼 수 있게 될 테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그런 기획전을 했던 것도 같은데, 좋은 아이디어를 주셔서 감사하다. 윤가은 : 선생님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어 감사했다. 나도 관객 분들과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이 리스트를 다시 살피고 싶다. 김홍준·봉준호·윤가은이 꼽은 최고의 한국영화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 <청춘쌍곡선> (한형모, 1956) · <춘몽> (유현목, 1965) · <산천도 울었다> (강찬우, 1965) · <어느 여배우의 고백> (김수용, 1967) · <공처가 삼대> (유현목, 1967) · <이조 여인잔혹사> (신상옥, 1969) · <태양닮은 소녀> (이만희, 1975) · <별들의 고향 2> (하길종, 1978) · <상록수> (임권택, 1978)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임권택, 1984) 봉준호 감독 “숙제하듯 추려봤는데 스무 편 가까이 되네요. 동료들과 함께 활동한 시기인 2000년대를 제외하고 꼽았습니다.” · <하녀>(김기영, 1960) · <화녀>(김기영, 1970) · <이어도>(김기영, 1977) ·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김기영, 1978) · <바람불어 좋은 날>(이장호, 1980) · <꼬방동네 사람들>(배창호, 1982) · <바보선언>(이장호, 1983) · <개그맨>(이명세, 1988)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배용균, 1989) · <우묵배미의 사랑>(장선우, 1990) · <그들도 우리처럼>(박광수, 1990) ·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김유진, 1990) · <경마장 가는 길>(장선우, 1991) · <너에게 나를 보낸다>(장선우, 1994)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1996) · <넘버3>(송능한, 1997) ·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김태용·민규동, 1999) 윤가은 감독 “영화감독이란 꿈을 꾸고 키워나가던 청소년과 20대 시절, 개인적으로 큰 영감과 자극이 되었던 영화들을 꼽았습니다.” ·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변영주, 1995) · <미술관 옆 동물원>(이정향, 1998) ·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1998) ·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김태용·민규동, 1999) · <와이키키 브라더스>(임순례, 2001) ·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 2001) ·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 · <친절한 금자씨>(박찬욱, 2005) · <타짜>(최동훈, 2006) · <가족의 탄생>(김태용, 2006) · <시>(이창동, 2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