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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의 한중간, 한국영화의 나이테를 더듬다 2024.06.20 8975
2020년대의 한중간, 한국영화의 나이테를 더듬다
‘2024년 한국영화 100선’ 둘러싼 김홍준·봉준호·윤가은 대담
 
글 : 남선우(씨네21)
사진 : 최성열(씨네21 사진기자)

 
* (좌측부터) 김홍준 원장, 봉준호 감독, 윤가은 감독

최고를 꼽는 건 언제나 곤란한 일이지만 그만큼 재미난 이야깃거리도 없다.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이 ‘2024년 한국영화 100선’을 발표한 지도 어느덧 한 달. 그사이 순위가 공개된 상위 10선을 필두로 한 240인의 선택이 뉴스를 장식했고, 많은 영화광들의 SNS에 목록이 공유됐다. 리스트는 또 다른 리스트를 낳는 법. 공감과 반론, 대세와 소신, 고전과 최신을 아우르는 그들 각자의 리스트가 여기저기서 돋아났다. ‘내가 사랑한 한국영화 말하기 챌린지’ 물결을 보는 듯했다.
이 흐름을 함께 타고자 100선 선정을 주관한 한국영상자료원 김홍준 원장과 100선에 이름을 올린 두 감독을 <아카이뷰>에 초대했다. <화녀>(1970)가 개봉할 때쯤 돌을 맞았다는 봉준호 감독과 <꼬방동네 사람들>(1982)과 같은 해에 태어난 윤가은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클래식이 된 영화들과 나란히 숨 쉬기 시작해 자기 작품을 새 시대의 명작으로 빚은 두 감독은 김홍준 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한국영화의 나이테’를 매만졌다. 그들의 지문이 새겨진, 그들만의 취향이 묻어난 리스트도 여럿 탄생했다. 참고로 세 영화인은 앞서 선정 위원 240인에 포함되지 않았기에 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한국영화가 무엇인지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대담을 읽으며 나만의 리스트 만들기에 동참하시길. 그렇게 한국영화의 어제를 기억하고, 내일을 응원해주시길.
 
지난 5월 31일 ‘영화인 240명이 선정한 역대 최고 한국영화 100편’의 목록이 공개됐다. 이 리스트로부터 받은 첫 인상이 궁금하다.
김홍준 : 원장으로서 100선 선정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부터 말씀드리고 싶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존재를 더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왔는데, 2014년에 이어 10년 주기로 새롭게 100선을 꼽아보고자 2년 전부터 준비했다.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베스트 10 순위도 매겼다. 이를 많은 언론이 보도하면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 같아 기쁘다. 물론 이런 기획은 <씨네21>이나 서울아트시네마도 할 수 있지만 영자원은 영상 자료를 직접 관리·연구·복원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고전을 복원함에 있어서도 이 리스트가 중요한 기준이 되어줄 것이다. 더불어 한국영화에 대한 비평적 담론이 줄어든 시대에 이 리스트가 차세대 연구자들을 자극하길 바란다. 리스트를 둔 갑론을박도 기대했는데, 조금씩 벌어지고 있어 재밌다. 영자원 홈페이지에 개인별 리스트가 공개돼있고, <아카이브 프리즘>으로도 100선을 조명할 예정이다. 여러 경로로써 논쟁의 출발점을 만들었으니 남은 건 관객의 몫이 아닐까 싶다.
봉준호순위를 보는 것도 재밌지만, 리스트의 장점은 내가 못 봤던 영화를 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제목도 몰랐던 영화가 중요하다고 언급되면 궁금하지 않겠나. 작품의 중요도를 떠나더라도 이 리스트엔 지금의 젊은 관객들이 재밌게 볼 법한 영화들이 너무 많다. 넷플릭스나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KoreanFilm)에서 고화질로 감상 가능한 작품들도 있으니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
김홍준100선 중 3분의 1은 한국고전영화 채널에서 볼 수 있다. 연도별 재생 목록도 만들어뒀다.
봉준호윤가은 감독의 소감도 궁금하다. <꼬방동네 사람들>(1982)이 개봉할 때 태어났는데 <우리들>(2016)로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나는 <화녀>(1970)가 개봉했을 때쯤 돌잔치를 하고 있었을 거다. (웃음) 히치콕의 <현기증>(1958)에 나이테를 보며 시간의 흐름을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리스트가 딱 그런 느낌을 준다. ‘한국영화의 나이테’같달까.
윤가은2014년에도 한국영화 100선을 꼽았다는 걸 몰랐기에 이번에 본 100선 목록이 무척 새롭게 느껴진다. 알았으면 그 목록을 토대로 열심히 공부했을 텐데, 아직도 못 본 영화가 참 많다. 내가 한창 영화를 꿈꿀 시기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였기 때문에 동시대 영화를 보기에도 바빠서 고전을 챙기지 못했다. 이제야 조금씩 한국 고전을 찾아보고 있는 것 같다.


 
* (좌측부터) 봉준호 감독, 윤가은 감독
 

“리스트의 장점은 내가 못 봤던 영화를 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목록은 10년만의 갱신이다. 앞서 진행한 2014년 버전 대비 네 배 가까운 인원이 선정에 참여했고, 2014년의 100편 중 63편만이 이번 목록에 그대로 남았다. 그럼에도 2014년 공동 1위에 오른 <하녀>(1960), <오발탄>(1961), <바보들의 행진>(1975)은 여전히 10선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김홍준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10년 전엔 주로 영화 연구자들, 평론가들이 선정에 참여했다. 상대적으로 고전을 많이 아는 분들이라 목록에도 고전의 비중이 컸다. 반면 올해는 연구자가 아닌 분들이 많이 참여해서 리스트가 젊어진 느낌이 든다. 지금 세대가 좋아할 만한 근작이 다수 뽑힌 건 흥미롭지만 1970년대 이전의 고전 한국영화를 어떻게 더 알릴 수 있을지 고민이 생긴다.
봉준호좋은 의미에서 신작과 옛 영화가 클래식의 자리를 두고 경쟁 중인 것 같다.
김홍준그렇다. 이른바 ‘한국형 르네상스’로 불리는 21세기 초반 영화들이 100선 내에 부쩍 늘었고, 베스트 10 순위권에서도 21세기 영화들이 약진했다.
봉준호그렇다면 100선에 아쉽게 들지 못한 101위 영화가 궁금해진다. 원장님은 아실 것 같아 여쭤본다.
김홍준집계 결과 동률일 경우 오래된 영화를, 즉 더 긴 시간을 버틴 영화를 우선순위에 뒀다. 그러면서 공동 101등이라고 볼 수 있는 영화가 여럿 생겼다. 발표하자면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 <개벽>(1991),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나쁜 영화>(1997), <바람난 가족>(2003),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장화, 홍련>(2003), <황해>(2010), <부당거래>(2010),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 <1987>(2017), <소설가의 영화>(2022)가 있다. 홍상수 감독 작품 수가 많다보니 표가 분산된 경향이 있다.
봉준호다작인데다 작품이 다 좋다보니 모두가 합심해서 한 작품을 밀지 않는 이상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100선에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강원도의 힘>(1998)만 올랐지만, 감독 언급 횟수만으로 집계하면 홍상수 감독이 아주 높은 순위를 차지할 것 같다. 우리끼리라도 홍상수 영화 탑 3를 꼽아보면 어떨까?
김홍준출발을 알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밤의 해변에서 혼자>, <소설가의 영화>를 꼽겠다.
봉준호나는 <북촌방향>(2011), <하하하>(2010), 그리고 최근작 중에서는 <소설가의 영화>가 찡했다.
윤가은<하하하>,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 시절의 홍상수 영화를 좋아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도 꼽지 않을 수 없다.
봉준호역시 기념비적인 데뷔작이다. 홍상수 감독 작품만으로도 랭킹을 만들어 봐도 재밌을 것 같다.


 

한국형 르네상스라 불리는 21세기 초반 영화들이 100선에 늘었고, 베스트 10 순위권에서도 약진


10년 사이 재평가가 이뤄진 영화, 새롭게 100선에 진입한 영화 등이 있다면.

김홍준90년대 이전 영화 중 새롭게 진입한 영화로 눈에 띄는 건 박남옥 감독의 <미망인>(1955)이다. 발굴은 이미 됐지만 오랫동안 볼 수 없는 작품이었는데, 이제 유튜브에서도 감상할 수 있을 뿐더러, 한국의 첫 여성 영화감독이라는 점에서도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만희 감독의 <물레방아>(1966), 김기영 감독의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1978),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1987)도 새로 들어왔다.
봉준호<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컬트 팬들이 많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의지’라는 단어가 잠꼬대로 나오게 될 거다. (웃음) 미국에서도 블루레이로 출시된, 너무나 재밌는 괴작이다. 그리고 <기쁜 우리 젊은 날>이 2014년도 순위에 없었다는 것도 의외다. 그사이 배창호 감독 회고전이나 블루레이 발매 같은 사건이 있었나.
김홍준이번 설문은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을 나눠 진행했는데, 한국영화의 중추이자 중견이라 할 수 있는 50대 창작자들의 <기쁜 우리 젊은 날>에 대한 지지가 컸다고 본다. 10년 전에는 고전이라 생각하지 못하다가 지금은 고전으로 받아들이게 된 게 아닌가 싶다.

 
* (좌측부터)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 2001),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1996)

그 외에도 100선에서 제목을 확인하고 유독 반가웠던 작품이 있나.
윤가은1990년대 중반 이후의 작품부터는 대부분 극장에서 봤더라. 특히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2001)를 보고 충격을 크게 받았다. 영화관에서만 열 번을 봤다.
봉준호영화가 품은 감수성 자체로부터 충격을 받은 건가.
윤가은그렇다. 이제 막 20대로 접어드는 여성들을 이렇게까지 들여다보는 한국영화가 이전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
봉준호윤가은 감독이 <우리들>을 만들기까지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친 작품이었을 것 같다.
윤가은물론이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마치 현미경으로 찍은 영화 같았다. 이 작품을 통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일상을 소중하게 들여다보는 시선을 배웠다.
봉준호윤가은 감독의 말을 들으며 연도순으로 목록을 빠르게 훑어보니 그 자체로 감수성의 역사가 아닌가 싶다. 시대별로 새로운 감수성이 등장하고, 신인들은 또 그 영향을 받아 자기 작품을 만들어온 흐름이 보인다. 나는 장준환, 허진호 감독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시사회에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셋 다 감독이 되기 전, 변변치 않던 시절이었는데, 모두 그 영화의 듣도 보도 못한 감수성과 연출 방식에 충격을 받았다. 셋이 모여 ‘내가 딱 이런 느낌의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한탄하며 마치 자기가 한발 늦었다는 식으로 얘기하며 소주를 마셨다. 사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영화였는데 말이다.

역시나 1990년대, 2000년대 작품이 각 20편, 24편으로 100선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봉준호<우리들>처럼 비교적 근작으로 여겨지는 영화들조차 내후년이면 10주년을 맞는다. 지금의 영화과 학생들도 모여서 윤가은 감독 작품을 분석하고 있지 않겠나. 나 또한 학교와 동아리에서 한창 영화를 탐색하던 시절에 본 1990년대 영화에 대한 애착이 많다. 장선우, 박광수, 이명세, 정지영 등 굵직한 이름들이 떠오른다. <우묵배미의 사랑>(1990)은 스무 번 넘게 보며 대사도 외우고 그랬다. <그들도 우리처럼>(1990)도 충격적이었다. 유영길 촬영감독의 훌륭한 촬영과 문성근 배우의 쓸쓸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취조 장면에서의 유퉁 배우도 연기를 무척 잘했다. <남부군>(1990)은 그 자체로 사회적인 이슈였다. 안성기 배우의 라스트 신을 보며 눈물이 맺히는 통렬함을 느꼈다. 그리고 DVD로 다시 본 <경마장 가는 길>(1991)에서 홍상수 작품 세계의 전조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리스트엔 없지만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도 아주 좋아한다. 내 영화를 찍고 싶은 열망이 가득했던 시기라 정말 눈의 실핏줄을 터뜨려가며 영화를 보던 시기다. 그래서 1990년대 영화 제목들을 보면 이렇게 애틋해진다.
윤가은1980년대생인 우리 세대에게는 <살인의 추억>(2003)이 그런 영화다. 당시 영화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파다했고, 나 또한 보자마자 쇼크를 먹었다. 저런 영화가 세상에 나오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그때부터 영화적 완성도나 장르 영화에 대한 인식에 전환이 왔다. 그런데 요새 신기하다고 느끼는 건,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살인의 추억>을 고전으로 인식한다는 거다. 20년 전 영화이니 그럴만한데, 엊그제 <살인의 추억>을 처음 보고 온 학생들이 흥분해서 내게 감상을 들려주는 식이다. (웃음) 최근 가장 큰 충격 중 하나였다.
봉준호그 영화를 서른넷에 찍었고, 작년이 20주년이었는데, 시간이 이렇게 빠른가 싶다!


* (좌측부터 시계방향)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 <기생충>(봉준호, 2019), <괴물>(봉준호, 2006), <마더>(봉준호, 2009)
 

지금 MZ세대들에게 영화 <살인의 추억>은 고전?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2위), <기생충>(3위), <괴물>, <마더>로, 윤가은 감독은 <우리들>로 100선에 이름을 올렸다. 처음 리스트에서 작품명을 확인할 때 어떤 심경이었는지 솔직한 후기를 듣고 싶다.

윤가은김홍준 원장에게 아무 멘트 없이 100선 목록만 전달받았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뜻인 줄로만 알았다. (웃음) 내가 고전 영화를 많이 안 봤구나 반성하면서 목록을 보다가 <우리들>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영화를 몇 편 만들지도 않았는데……
봉준호만든 영화의 절반이 100선에 들어갔다!
윤가은나는 <우리들>을 아주 작은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응답자들이 이 영화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찾아주신 걸까 궁금해졌다. 나 또한 만든 사람으로써 그걸 다시금 고민해봤다. 무엇보다 이 리스트를 통해 내게 영향을 미친 여성 감독들을 많이 떠올렸다. 왜 이 작품이 목록에 없을까 아쉬워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나는 작품이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1998)이다.
봉준호<미키17>까지 총 8편의 장편영화를 찍었고, 그 중 7편이 개봉했는데, 리스트에 네 편이 포함됐으니 기쁘고 영광스럽다. 그런데 이 영화들이 2034년, 2044년에도 언급될 수 있을까? 시간의 물결 속에서 어느 정도를 버텨낼지 궁금하다. 세월이 지날수록 어딘가로 올라가는 영화들이 있는가 하면 세월 속에서 쓱 사라지는 영화도 있는데, 내 영화들의 운명은 어떨지 모르겠다. 모든 감독은 자기 작품이 클래식이 되길 바랄 테다. 그래서 더욱 10년 후, 20년 후가 궁금하다.
김홍준그때는 드라마나 OTT 시리즈도 이 리스트에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워보기도 했다. 그렇게 된다는 가정 하에 어떤 작품을 꼽고 싶은지 질문했더니 <네 멋대로 해라>(2002), <비밀의 숲>(2017), <나의 아저씨>(2018), <킹덤> 시즌 1(2019), 시즌 2(2020), <오징어 게임>(2021), <나의 해방일지>(2022) 같은 제목들이 언급됐다. 두 분은 어떤 작품이 떠오르나.
봉준호주찬옥 각본, 황인뢰 연출 콤비를 좋아했다. <천사의 선택>(1989)이 떠오른다. 신애라 배우의 데뷔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윤가은최근에는 < D.P. > 시즌 1(2021), 시즌2(2023)를 재밌게 봤고, 오래 전부터 노희경 작가 작품이나 안판석 감독 작품을 좋아했다. <풍문으로 들었소>(2015)는 영화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봉준호 : 안판석 감독은 캐릭터 묘사가 정말 대단한 분이다. <서울의 달>(1994), <파랑새는 있다>(1997), <도둑의 딸>(2000) 등 주옥같은 작품을 참 많이 쓴 김운경 작가도 언급하고 싶다.
윤가은 : 이렇게 따져보니 리스트가 여러모로 확장될 수 있을 것 같다. 드라마만의 리스트를 따로 만들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헤어질 결심>(박찬욱, 2022)

한편 선정작 중 2020년대 개봉작은 <헤어질 결심>(2022)이 유일하다. 훗날 2020년대 한국영화는 얼마나 호명될 수 있을까. 주목하는 작품 혹은 창작자가 있는지 듣고 싶다.
윤가은 : <남매의 여름밤>(2020) 윤단비 감독,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2) 김세인 감독이 어떤 작품을 또 만들지 너무나 궁금하다. 최근에는 이 두 분의 차기작을 가장 기대하고 있다.
봉준호 : 나 또한 <남매의 여름밤>을 무척 좋아해서 일본판 블루레이까지 갖고 있다. 차기작이 기대된다. 나는 <소리도 없이>(2020)를 연출한 홍의정 감독 팬이기도 하다. 작품이 좋을 뿐더러 장르영화에 대한 접점도 있어 다음이 기대된다. 엄태화 감독은 이제 신인이라고 부르기는 애매하지만 여전히 젊은 감독으로서 기대가 크다.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를 아주 재밌게 봤다.
윤가은 : 이번 리스트를 보며 클래식이란 무엇일까를 정말 오랜만에 다시 생각했다. 옛날에는 어떻게 이렇게 이상하고 새로운 영화가 계속해서 나왔을까, 왜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을까 고민했다. 우리 세대의 문제로 치부할 순 없을 텐데, 어떻게 하면 나도 용감하게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를 많이 생각해보게 됐다.
봉준호 : 새로운 재능은 꾸준히 등장하고, 오히려 지금 더 많아 보이기도 하는데, 산업이 그 재능을 얼마나 품고 갈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그런 포용력이 2000년대 초반에 비해 나빠진 게 아닐까. 과감하고 이상한 시도들이 멀쩡히 투자를 받고, 메인 스트림 근접한 곳에서 탄생했으니까. 그 시절의 활기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윤가은 : 이제 그런 시도는 독립영화 신에서밖에 못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이 리스트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마지막으로 <아카이뷰> 독자를 비롯한 관객은 이번 리스트를 어떻게 소화했으면 하나.
봉준호 : 마치 도장 깨기 하듯 제목을 한 편씩 선으로 그어가며 영화를 보셨으면 한다.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채널에서도 좋은 화질로 보실 수 있지만, 영자원에 오셔서 큰 스크린으로 감상한다면 더욱 좋겠다. 미술관의 상설 전시 코너처럼 이 리스트의 작품들을 항시적으로 상영하는 기획전이 있으면 어떨까? 예를 들어 일주일 중 하루는 100선 작품만 상영한다든지.
김홍준 : 그렇게 1년 내내 극장에 오신 분들은 어느새 100편을 다 볼 수 있게 될 테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그런 기획전을 했던 것도 같은데, 좋은 아이디어를 주셔서 감사하다.
윤가은 : 선생님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어 감사했다. 나도 관객 분들과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이 리스트를 다시 살피고 싶다.

  
 

김홍준·봉준호·윤가은이 꼽은 최고의 한국영화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주관적이고 대안적인 (발견을 기다리는) 한국고전영화 10편을 선정했습니다.”

· <청춘쌍곡선> (한형모, 1956)
· <춘몽> (유현목, 1965)
· <산천도 울었다> (강찬우, 1965)
· <어느 여배우의 고백> (김수용, 1967)
· <공처가 삼대> (유현목, 1967)
· <이조 여인잔혹사> (신상옥, 1969)
· <태양닮은 소녀> (이만희, 1975)
· <별들의 고향 2> (하길종, 1978)
· <상록수> (임권택, 1978)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임권택, 1984)
  
봉준호 감독
“숙제하듯 추려봤는데 스무 편 가까이 되네요. 동료들과 함께 활동한 시기인 2000년대를 제외하고 꼽았습니다.”

· <하녀>(김기영, 1960)
· <화녀>(김기영, 1970)
· <이어도>(김기영, 1977)
·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김기영, 1978)
· <바람불어 좋은 날>(이장호, 1980)
· <꼬방동네 사람들>(배창호, 1982)
· <바보선언>(이장호, 1983)
· <개그맨>(이명세, 1988)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배용균, 1989)

· <우묵배미의 사랑>(장선우, 1990)
· <그들도 우리처럼>(박광수, 1990)
·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김유진, 1990)
· <경마장 가는 길>(장선우, 1991)
· <너에게 나를 보낸다>(장선우, 1994)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1996)
· <넘버3>(송능한, 1997)
·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김태용·민규동, 1999)
 
윤가은 감독
“영화감독이란 꿈을 꾸고 키워나가던 청소년과 20대 시절, 개인적으로 큰 영감과 자극이 되었던 영화들을 꼽았습니다.”

·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변영주, 1995)
·
<미술관 옆 동물원>(이정향, 1998)
·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1998)
·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김태용·민규동, 1999)

· <와이키키 브라더스>(임순례, 2001)
·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 2001)
·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
· <친절한 금자씨>(박찬욱, 2005)
· <타짜>(최동훈, 2006)
· <가족의 탄생>(김태용, 2006)
·
<시>(이창동,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