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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종이에 안기다 | 2024.11.26 | 799 |
필름, 종이에 안기다
한국영화박물관 기획전시〈영화문고-영화 출판과 읽기의 연대기, 1980년대 이후〉 글: 남선우(씨네21) 사진: 김승율(씨네21) 지난 11월, 서울 상암동에 새 책방이 문을 열었다. 그것도 영화에 관한 책으로 가득 찬. 2025년 2월 8일까지 독자를 만날 이곳은 한국영상자료원 내 한국영화박물관 기획전시실에 마련된 공간으로, 〈영화문고-영화 출판과 읽기의 연대기, 1980년대 이후〉라는 이름이 붙은 전시이기도 하다. ‘영화문고’는 40여 년에 걸친 영화 서적의 자취를 요약하고, 내일의 책을 제안한다. 서가를 훑으며 그 시간선을 따라 걸어본 후기를 전한다. 배우, 감독 등 문화 인사들의 추천 도서 목록과 더불어 이번 전시 첫 번째 토크 프로그램이었던 그래픽디자이너 신해옥, 배민기, 북아티스트 김명수의 영화책 제작기도 덧붙인다. ![]() 1장. 80년대 이후, 이런 책을 읽어왔다전시실 중앙을 가로지르는 책상 위에 99권의 책이 누워있다. 이는 2021년 발행된 〈아카이브 프리즘〉 6호를 기반에 두고 조성된 섹션. 한국영상자료원 기관지인 〈아카이브 프리즘〉은 영화사 및 이론 인식이 확대된 것은 물론 정치적 격변이 일어난 1980년대를 “영화도서 연대기의 가장 앞 장에 놓여야 하는 시기”로 삼았다. 한국영화 뉴웨이브의 태동기이자 예술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저항기였던 1980년대에 비로소 “시대와 조응하는 출판의 기류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읽힌 영화책의 역사를 대변하는 아흔아홉 권은 평론·연구 등으로 활동해온 27인의 선택을 추린 결과다. 그 면면은 크게 역사서, 비평서, 작법서, 각본집, 인터뷰집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식민지시기 영화사를 다룬 유현목의 〈한국영화발달사〉(1980), 미국 유학을 다녀온 평론가 출신 감독이 ‘영화 불모지’로서 한국을 조망한 하길종의 〈사회적 영상과 반사회적 영상〉(1982)이 서가의 초입을 장식하고, 서울영화집단의 〈새로운 영화를 위하여〉(1983), 현 한국영상자료원장 김홍준이 구회영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영화에 대하여 알고싶은 두세가지 것들〉이 바톤을 이어받는다.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2014), 유운성의 〈유령과 파수꾼들〉(2018), 김영진의 〈순응과 전복〉(2019)과 같은 평론가의 책들도 다수를 차지한다. 시나리오와 에세이가 대화하듯 구성된 〈벌새-1994년, 닫히지 않는 기억의 기록〉(2019), 여성 감독 13인의 인터뷰가 실린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2021)와 같이 새 시대와 호흡하는 책들도 눈에 띈다. ![]() 2장. 90년대 영화 출판과 잡지그 옆 벽면은 “영화 담론 시대” 개막의 증거물들이 메우고 있다. 1990년대는 영화를 분석하고 발굴하려는 애호가들의 욕망이 수면 위로 드러난 때이자 영화를 교양으로서 이해하려는 대중이 늘어난 시점이다. 이들은 다양한 유형의 영화 서적으로 욕구를 하나 둘 충족할 수 있었다. 〈영화보기와 영화읽기〉(1995), 〈세계 영화 100〉(1996), 〈영화와 글쓰기〉(1997) 모두 90년대의 저작이며, 해외 거장들의 평전(〈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세계〉(1995), 〈나의 인생 나의 영화 장 르누아르〉(1998), 〈미조구찌 겐지의 영화세계〉(1998), 〈로베르 브레송의 세계〉(1999) 등)이 국내에 소개된 것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이 시기는 영화 잡지의 전성기였다. 〈스크린〉 〈로드쇼〉 〈영화저널〉 〈씨네21〉 〈키노〉 〈프리미어〉 〈필름 2.0〉 〈영화언어〉 〈독립영화〉가 대표적이다. 영화 산업이 부흥하면서 트렌드와 크리틱, 라이프스타일을 두루 관장하는 잡지들이 인기를 얻었다. 각 매체의 특징과 지향을 정리한 유인물도 전시장에서 읽어볼 수 있다. ![]() 3장. 어느 수집가의 책영화문고 뒤편 통로에는 ‘귀중본-어느 수집가의 책’ 섹션이 꾸려져있다. 그 수집가는 바로 한상언. 그는 한상언영화연구소의 대표이자 천안의 복합문화공간 노마만리 운영자이다. 식민과 분단을 주제로 한 영화사를 연구해온 그가 모아온 해방 전후의 시나리오 및 영화인들에 얽힌 자료, 북한영화 관련 자료들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카프(KAPF) 영화 〈유랑〉(1928)의 ‘영화소설’, 〈조선일보〉에 연재된 〈노래하는 시절〉(1930)의 시나리오부터 일제강점기 영화 잡지 〈영화시대〉, 김정일이 쓰고 조선로동당출판사가 펴낸 북한의 영화 부문 지침서 〈영화예술론〉(1984) 등이 표지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 4장. 어디에도 없던 영화책영화문고는 기존에 널리 읽힌 영화책과 처음 세상에 나온 영화책의 조화로 세워졌다.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영화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작한 ‘아티스트북’들이 그 신간의 예시다. 어디서도 볼 수 없고, 살 수 없는 이 책들은 영화문고 곳곳에 자리해 또 하나의 영화 읽기 방법을 제시한다. 프론트도어(강민정, 민경문)가 작업한 〈망점들〉은 이번 전시의 의미를 반사하는 책으로, 오래된 영화책 도판을 스캔해 엮은 “불완전한 비주얼 아카이브 도서”다. 배민기 디자이너가 북 아티스트 김명수와 협업한 〈쿠아론의 패닝〉은 롱테이크, 패닝, 트래킹 등으로 주목받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언어를 두 권의 연속적인 파노라마로 구성한 책이다. 두 권을 감싼 상자 또한 쿠아론의 작품 세계를 참조한 아트워크다. 신신(신해옥, 신동혁)의 〈핸들-북 클래식〉은 한국 고전 속 자동차 운전 장면을 망라했다. 600쪽에 달하는 이 책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핸들을 잡은 기분을 낼 수 있다. 한편 정사록(〈군상〉)은 국내외 군상극 50편 속 인물 실루엣을 디지털 프린트로 재해석했고, 강보연(〈필름 북 스토리〉)은 인스타그램 스토리 포맷을 활용해 책과 공간을 연결 지었다. 한국영화 속 도서·독서 장면을 일변한 〈미망〉 김태양 감독의 비디오 에세이 〈책이 장면이 될 때〉도 영화문고에서 상영 중이다. 〈쿠아론의 패닝〉&〈핸들-북 클래식〉 작업기 #〈쿠아론의 패닝〉 배민기 디자이너 ![]() 5장. 문화 인사 8인이 추천하는 영화-비영화 책너무 많은 책이 꽂혀있으면 오히려 어떤 책부터 꺼내야 할지 헷갈리는 법. 행복한 고민 중일 영화문고 손님들을 위해 고민시, 박정민, 박찬욱, 정서경, 정주리, 손희정, 김중혁, 정성일이 권하는 도서 목록을 아래와 같이 옮긴다. 전시장에서는 이들이 적어내린 선정의 변도 함께 볼 수 있다. 각자의 취향과 필치가 묻어나는 코멘트는 영화문고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고민시 배우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문미순) 박정민 배우 〈박찬욱의 몽타주〉(박찬욱) 박찬욱 감독 〈오너러블 스쿨보이 1, 2〉(존 르 카레) 정서경 작가 〈로버트 맥키의 스토리: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1〉(로버트 맥키) 정주리 감독 〈종의 기원〉(찰스 로버트 다윈) 손희정 평론가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리베카 스쿨루트) 김중혁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지금 쳐다보지 마 외 8편〉(데프니 듀 모리에) 정성일 평론가 〈루이스 부뉴엘: 마지막 숨결〉(루이스 부뉴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