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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빛 인생>에는 사랑도, 추억도, 삶도 있었다. 2024.12.20 774
<장미빛 인생>에는 사랑도, 추억도, 삶도 있었다.
개봉 30주년을 맞은 영화 <장미빛 인생>의 배우 최명길 인터뷰

글: 최현수(씨네21)
사진: 백종헌(씨네21)

 
배우 최명길

배우 최명길의 얼굴은 세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기억된다. 1980년대 후반을 지나온 이들에게는 <그 여자>(1990)와 <결혼>(1993) 속 도회적인 여성으로, 1990년대 후반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용의 눈물>(1996)과 <명성황후>(2001) 속 강인한 국모의 형상으로, 2000년대 후반부터 그를 알게 된 이들에겐 <펀치>(2014)에서 절대 권력을 쥔 법조인 윤지석을 떠올릴 것이다. 최명길은 40년 가까이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시청자들의 안방을 책임졌던 배우다.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최명길은 잊을 수 없는 얼굴이다. 데뷔 초에는 <푸른 하늘 은하수>(감독 변장호, 1984), <눈짓에서 몸짓까지>(감독 고영남, 1986) 등 70년대 대표하는 감독들에게 젊음을 선사했고, 박철수 감독의 <안개기둥>(1986)과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1990)을 통해 한국 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상징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올해로 개봉 30주년을 맞는 김홍준 감독의 <장미빛 인생>(1994)은 배우 최명길에게도 큰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가리봉동에서 심야영업을 하는 만화방 사장 마담을 연기한 최명길은 혼란스러웠던 당대의 시대상을 온 얼굴에 체화하는 저력을 선보였다. 이를 입증하듯 1994년은 최명길의 해였다.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영평상의 여우주연상은 물론, 낭트3대륙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받았다. 영화와 달리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12월 16일, 배우 최명길을 만나 30년 전 가리봉동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미빛 인생 스틸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최재성 배우, 김홍준 감독과 함께 개봉 30주년 기념 GV에 참석했다. 30년 전 영화에 대해 관객들과 이야기하는 경험이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 같다.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영화가 바로 <장미빛 인생>이다. 이후로는 항상 영화를 관객의 입장으로만 접했다. 그동안 드라마 쪽에 오래 머물러 있었기에 항상 영화에 대한 욕심이 있었어도 새롭게 도전할 기회도 적었다. 30주년 행사를 통해 관객과 마주하면서 영화와 한 발 더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영화계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체감하는 자리기도 했다. 

과거에 영화를 보았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을 것 같다. 35mm 필름에서 4k로 복원이 되기도 했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양가적인 감정이 일었다. 어린 시절의 연기를 보면서 드는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반면에 굉장히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풋풋한 느낌도 있었다. 영화를 촬영하던 당시였던 1994년은 영화계의 판도가 여러모로 바뀌던 시점이었다. 전반적인 시스템부터 장비까지 많은 것들이 혁신을 맞이했다. 나는 그 변화의 시작점을 함께하는 동시에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뀐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는 점도 여러모로 양면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미빛 인생>은 김홍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우묵배미의 사랑>으로 큰 인기를 끈 뒤 차기작으로 신인 감독의 입봉작을 택한다는 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이었을 것 같다. 
인터뷰 오기 전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출연한 영화가 열 편도 되지 않더라. 만났던 작품이 다 너무 좋은 작품이었기에 어쩌면 가성비가 좋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웃음) 맡은 인물들이 하나같이 시대상을 반영하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있던 역할이었다. <안개기둥>의 일하는 전문직 여성부터 <장미빛 인생>의 마담까지 전부 그런 얼굴들이었다. 

좋은 인물과 시나리오를 고르는 안목이 뛰어났기 때문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웃음) 어떤 성향과 스타일의 인물인지는 상관이 없다. 사회와 개인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면 무조건 마음에 와닿더라. <장미빛 인생>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범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 안에는 그 시대를 살아가던 우리의 모습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지금도 영화를 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다. 제아무리 평범한 이야기라도 그 안에 담겨 있는 메시지의 가치는 무시할 수 없다. 

<장미빛 인생> 배우 최명길

김홍준 감독이 드라마 <결혼>을 보고 캐스팅을 결정했다고. 당시 드라마에서 주로 소화했던 배역은 도회적이고 모던한 여성상이었다면 <장미빛 인생> 속 마담은 완전히 상반된 인물이다.
당시 TV 드라마에서 나는 항상 도회적이고 올곧은 인물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묵배미의 사랑>도 그동안 내가 연기했던 인물들을 감안해보면 오히려 유혜리 배우가 연기했던 일도의 아내 역이 더 맞을 수도 있었다. 당시 드라마에서 바람난 여성을 연기한 적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배우가 그렇듯 하나의 모습으로만 역할이 고정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나라는 배우가 지닌 잠재력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장미빛 사랑>에서 연기했던 마담도 그간 소화했던 인물들과는 전혀 달랐다. 

당시 촬영을 진행하면서 김홍준 감독과의 작업기는 어땠는가.
김홍준 감독님은 배우를 꿰뚫어 보는 눈이 탁월한 분이다. 동시에 굉장히 배우를 신뢰하시는 분이다. 감독님의 지지 덕분에 편안하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 믿음에 보답하고자 더 잘하고 싶은 열의가 생기더라. 배우가 품고 있는 생각을 존중하면서도 핵심적인 부분들은 쉽게 지나가지 않고 확실하게 짚어 주셨다. 촬영장에서 여러 신들을 같이 의논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장미빛 인생>에서 유달리 마음에 가거나 특별히 좋아하는 장면을 꼽자면.
최재성 배우와 함께 옥상에서 연기한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의 결정적인 정수이자 모든 정서가 함축된 장면이다. 오히려 <장미빛 인생>에서 다루는 만화방 사람들 간의 감정은 그리 명료하지 않다. 모든 이야기를 세세하게 보여주지 않는 부분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오히려 등장인물의 감정을 전부 정확하게 따라갔다며 평범해질 수 있었다. <장미빛 인생>은 그런 둔탁함이 유달리 아름답다.

<장미빛 인생> 만화방

마담에게 심야영업 만화방은 지긋한 인간들을 마주하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모두가 떠나가도 계속 버티고자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만화방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오간다. 일용직 노동자, 노동 운동가, 건달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어우러지면서 그 속에서 사회 전반적인 문제들이 얼핏 드러난다. 이 공간 안에는 사랑도 있고, 추억도 있고, 삶이 있다. <장미빛 인생>은 그런 의미에서 시대를 아우르는 영화다. 

1994년 11월에는 제16회 낭뜨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는 영예를 얻었다. 당시 <씨받이>(감독 임권택, 1986)의 고 강수연 배우, <그들도 우리처럼>(감독 박광수, 1990)의 심혜진 배우에 이어 세 번째 수상이었다. 
너무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당연히 좋은 감정이 컸지만, 한편으로는 국제적인 상을 받은 뒤에 하루라도 빨리 스스로를 재충전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근데 수상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 결혼을 했다. 내가 기대한 것보다는 충전의 시간이 좀 너무 길었던 것 같다. 

그래도 결혼한 지 1년 만에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로 복귀하지 않았나.
맞다. 결혼 이후에는 영화와는 연이 없었다. 오히려 본격적으로 TV 드라마에 정착하는 시기가 되었다. 가만 보면 그 이후에 좋은 기억을 가진 작품 중에는 사극이 참 많았다. <용의 눈물>의 원경황후나 <명성황후>의 명성황후 같은 배역들 말이다. 사극에 출연해도 나는 주로 정치적인 권력을 지닌 왕비 역을 맡게 된 것 같다. 

<용의 눈물>, <대왕 세종>, <명성황후>, <근초고왕> 등 배우 최명길을 수식하는 또다른 키워드가 사극이다.
사극은 가장 정치적인 메시지를 다루고 있는 장르기에 개인적으로도 마음이 간다.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곧 다양한 메시지를 포괄하는 위치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MBC 13기 공채 탤런트로 입사한 때부터 <조선왕조 오백년>이라는 드라마 시리즈에 출연하게 됐다. 대단한 연기자 선배들과 데뷔 초부터 호흡을 맞추던 경험이 있어서 사극을 더 익숙하게 여기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배우 최명길

데뷔 44년 차에 드라마 43편을 포함하여 50편이 넘는 작품을 소화했다. 
긴 세월이 흐른 것 치고는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 느낌이다. (웃음) 사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활동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지금 내게 가장 큰 화두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과거와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그만큼 내가 카메라 앞에서 보일 수 있는 연기도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 차이를 나도 어서 빨리 보고 싶다는 염원이 크다. 

40년이 넘는 연기 인생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열정이 가득한 것 같다.
예전에 열심히 연기한 것은 그 시절의 최명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지금의 최명길은 같은 역할을 했을 때 어떤 연기가 도출될지 나조차도 궁금하다. 확실히 지금은 과거보다 변화한 내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줄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지금이야말로 의외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한다. 

워낙 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는 분기점 같은 작품들이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안개기둥> 아닐까. 사실 좋은 평가를 받은 <우묵배미의 사랑>이나 <장미빛 인생>도 모두 기억에 남는다. TV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최명길이란 이름을 각인시켰던 드라마 <그 여자>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용의 눈물>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고, <펀치>도 기억에 남는다. 작품마다 스스로에게 메시지를 부여하면서 연기했기 때문에 모든 작품이 소중하다.

GV가 끝나고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장미빛 인생’이라고 작성한 문구가 인상 깊었다. <장미빛 인생> 30주년이 배우 최명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새로운 장미빛 인생이 아직 오지는 않았는데. (웃음) 예전에는 스스로 제약을 걸고 엄두도 못 냈던 인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진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내 나이가 너무 좋다. 이제야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감정과 생각을 마주하고 있다. 물론 내가 갖고 있는 강점을 잊지 않고 잘 준비하고 있지만 어떤 도전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예능에 출연해서 본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는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아마 주변 지인들은 편하게 잘 웃고 안정적인 내 진짜 모습을 잘 알고 있어서 그렇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