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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 한 장, 세계를 연결하다 2024.12.20 337
디스크 한 장, 세계를 연결하다
문화 외교의 숨은 주역: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

글: 윤서연(한국영상자료원)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K-’라는 접두사는 세계에서 통용되는 한국문화를 뜻할 때 전혀 낯선 의미가 아니게 되었다. 한류라는 이름 아래 문화적으로 우위를 두고 싶어 했던 선조들의 염원은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가 <기생충>(2019)으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서 수상하고 2024년 한림원에서 작가 한강이 『소년이 온다』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을 고려한다면 그 소망은 현실이 되어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영자원도 이를 위한 물밑 작업에 아주 약간이라도 기여했다면 어떨까? 억겁의 시간이 쌓여 결국에 바위를 뚫고야 마는 한 방울의 물방울처럼 전 세계의 한류 성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면 어떨까? 이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것인지, 한국영상자료원은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를 2012년부터 시작했다. ‘영화와 여성’을 시작으로 ‘영화와 문학’, ‘영화와 가족, ‘영화와 운동’, ‘영화와 한국전쟁’, ‘영화와 서울’, ‘영화와 종교’ 등 특정 주제로 다각도로 연구할 수 있는 작품들을 수록한다. 한글, 중국어,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총 7개 국어의 (다국어) 자막을 수록하고, 한글과 영문으로 된 해설책자를 하나의 박스세트로 엮어서 해외에 무상 배포하고 있다. 이 사업은 2024년 현재까지 지속되며 한국영화를 해외에 소개하고 있다.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

 

'한류'라는 강줄기에 스며든 아주 작은 물방울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한국영화를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사업을 먼저 제안해 달라고 요청하여, 한류를 세계로 확장하기 위해 영자원에서 제안하게 된 것이 시작이다. 2000년대 이후 제작된 한국영화뿐만 아닌 한국 고전영화들을 해외 K 팬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그 명분이었고, 실질적으로는 해외의 한국학 연구자들과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국학 수업을 진행할 때 필요한 영상 교재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처음에는 8편으로 시작하였는데, 1학기 수업을 16주로 가정했을 때 각 영화 8편과 수업 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영화 해설을 제공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매년 편성되는 예산 상황에 따라 8편에서 4편으로 줄어들기도 했지만, 현재는 6편의 영화를 선별하여 수록하고 있다.
 
영자원에서 진행되는 사업의 이야기라 매우 지루하고 진부하게 들릴 수는 있으나,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는 1년을 기준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연간 사업이다. DVD 세트 하나 만드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 제작 및 배포 사업의 담당자이자 실무자로서 해외의 소요를 파악하여 작품의 주제를 정하고(주로 해외에서 한국문화와 관련하여 궁금해하는 주제들을 1순위로 구성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다문화, 청소년, 퀴어 등이 있다. 무속과 관혼상제 등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K-pop과 같은 현대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도 혼재되어 있다) 자문 회의를 개최하여 그 주제에 적절하고 알맞은 영화 후보군을 선별한다. 후보작들의 저작권과 디지털화된 소스들의 현황을 판별하여 최종적으로 아쉽게 수록하지 못하는 작품들도 존재한다. 만약 필름만 있다면 해당 영화를 디지털화하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해당 작품을 학술적이면서도 대중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필자들을 섭외하여 원고를 받고 영문 번역을 맡기는 동시에, 6편 작품의 자막 작업을 의뢰하여 DVD로 제작한다. 그리고 해외의 한국학 연구자와 공관, 문화원, 한글을 가르치는 세종학당 등에 대량으로 발송한다. 그러고 나면 모든 계절을 거쳐 1년 여의 시간이 지났음을 깨닫는다.


 

모든 계절을 거쳐 만들어지는 DVD 세트


 “네? 제가 한국영화를 널리 알리는 외교 사절단이라고요?”
 “DVD 패키지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만, 영화 파일을 USB로 담아서 주시면 안 될까요?”


우수영상물 DVD에 대한 위와 같은 피드백을 받고, 필자는 영자원에 입사하고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 제작 및 배포 사업을 담당하는 실무자로 근무하며 회의감과 무력감에 빠져들기도 했다. 속히 영화제에서 일하다 보면 프로그램팀에 계시는 분들이 우리 팀이 비디오 대여점인 줄 안다고 토로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마치 그런 기분인 건가 싶었다. 영화를 활용하고 싶어 하는 곳은 많지만 해설책자의 설명 없이는 해당 컬렉션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 저희 학과에서 한국영화를 주제로 졸업논문을 쓰는 학생들도 늘고 있습니다. 저희 학과에서 유용하게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내년도에 한국영화 학술행사를 열고자 하는데 준비할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대사관에 보내주신 DVD를 한글학교에 보내드리고자 해요! 공관에서도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유용할 것 같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으로 날라온 감사 편지

그렇지만 해외로부터 손수 보내주신 감사 서신과 DVD가 잘 도착했다는 감사의 메일을 받으면서 영자원에서 진행하는 이 사업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도리어 독일어나 포르투갈어 등 번역하는 언어의 개수를 늘려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예산이 허락하지 않아서 언어를 늘리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무엇보다도 올해는 공식적으로 한국과 외교를 맺은 쿠바의 한글학교에도 보내드렸는데, 해당 패키지가 배달 사고 없이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기원할 뿐이다.

실제로 활용되는 사례는 다음과 같다. 콜로라도 주립대 정혜승 교수는 ‘영화와 서울’에 나온 작품을 토대로 수업을 진행한 후 여름방학에 학생들과 함께 서울로 견학(field trip)을 와 영자원을 방문하기도 하였으며, 주영한국문화원에서는 ‘영화와 서울’, ‘영화와 여성’ 세트를 기반으로 런던영화제에서 해당 작품 상영회를 진행하였고, 힘을 얻어 올해의 사업을 마무리하고, 다시 내년도의 사업을 구상하고 준비한다. 그저 해당 사업을 사무적으로 끌어나갔지만, ‘한국영화를 통하여 외교 사절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타팀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해당 업무의 막중한 임무를 다시금 체감한다. 해당 사업에 관심 가져주시는 국내 연구자분들과 한국영화 애호가 분들에게는 송구하나 이 DVD 세트는 해외 배포용 비매품이고 무엇보다도 해외의 연구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구하기에는 어렵다는 말씀을 심심하게 전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