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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에서 탄생한 한국 애니메이션, 문달부를 기억하다 | 2025.03.05 | 317 |
광고에서 탄생한 한국 애니메이션, 문달부를 기억하다
문달부 구술 생애사 소개
글: 공영민(한국영상자료원 객원연구원)![]()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의 앞 페이지들에는 작품명조차 제대로 붙지 않은 여러 편의 짧은 영상들이 등장한다. 주로 광고와 뉴스의 비정기적인 콘텐츠로 활용한 이 영상들은 저마다의 제작 배경과 목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의 큰 줄기를 살펴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냉전 시기 전 세계에서 애니메이션이 가장 효과적인 프로파간다로 활용되었듯이 한국 애니메이션 또한 정부와 기업의 선전 영역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재와 기술이 턱없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재능있는 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한국 애니메이션의 태동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1956년 ‘국내 최초의 애니메이션’으로 알려진 < OB시날코(Sinalco) > 광고로 시작해 1967년 ‘국내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인 <홍길동>이 나오기까지, 1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이 빠르게 발전한 데에는 이 작품들의 감독인 문달부, 신동헌 등의 역할이 있었다. 따라서 2020년 10월 45인의 구술자료를 수집하는 대규모 프로젝트 ‘원로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 아카이빙 사업’을 시작하면서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의 첫머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문달부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첫 번째로 주어진 책무였다고 할 수 있다. ![]() * < OB시날코 > 스토리보드
국내 최초의 애니메이션 < OB시날코 >를 만든 문달부 선생님은 1935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나 중국 길림성 천강(吉林省 天崗)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광복 후 귀국한 그는 김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발휘했던 미술에 뜻을 두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6.25전쟁을 맞아 입대해 1955년까지 육군 제2훈련소(논산훈련소) 작전처 행정과에서 복무한 그는 제대 후 국내 최초의 TV 방송국인 코캐드(KORCAD) 방송국에 입사했다. 코캐드 방송국 미술부에서 근무하며 해외 애니메이션을 접하는 한편 방송에 필요한 다양한 미술 작업과 영상매체의 제작법 등을 습득했다. 이 과정에서 원화부터 연출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을 거친 < OB시날코 >가 탄생했다. 동양맥주주식회사(OB)의 의뢰를 받아 코캐드 방송국이 16밀리 흑백으로 제작한 6초 분량의 음료 광고인 < OB시날코 >는 영상은 소실됐지만, 남아있는 스토리보드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광고 <럭키춘향(럭키치약-춘향전 편)> 코캐드 방송국이 화재로 없어진 후 삼중당 미술부를 거쳐 럭키화학(락희화학)공업사에 입사한 그는 다시 한번 애니메이션을 접목해 <럭키춘향(럭키치약-춘향전 편)>(1960) 등의 광고를 제작했다. 이후 구술자는 럭키화학 선전실과 금성사 선전실에서 제품과 기업의 홍보를 담당하며 기업 CI와 로고를 디자인하고 다수의 광고를 제작했다. 1977년 금성사에서 퇴직한 후에도 오랜 기간 광고업계에서 활동하며 대중에게 익숙한 상품광고 이미지들을 작업했다. ![]() * 럭키 뽀뽀 비누 광고 시안 이력으로 알 수 있듯이 문달부 선생님의 생애는 전문 광고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순수미술에 뜻을 두었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방송국과 잡지사, 기업 선전실에서 근무하던 시절을 따라가다 보면 광고에서 미술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그리고 1960년을 전후한 시기 어떤 배경에서 다수의 애니메이션 광고들이 등장하는지를 유추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어린 시절부터 서예로 익힌 붓의 놀림과 만화가 김용환의 그림에 영향을 받은 펜화 그리고 코캐드 방송국에서 접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해외 애니메이션들이 그만의 색깔을 담은 애니메이션과 광고를 만드는 데에 자산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여정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그의 이력이 그에게는 거의 잊힌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광고와 그림들은 때에 따라 빛을 띠었다가도 금세 사라지곤 한다. 따라서 문달부의 구술은 “기억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올바른 퍼즐 조각이 존재해야 하고 이 조각을 서로 적절하게 연결”(산제이 굽타, 『킵샤프』, 2020)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소중한 기억자료를 남겨주신 문달부 선생님은 구술을 마치고 얼마 후 타계하셨다. 생전의 마지막 작업이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의 귀중한 자료로 남아 더욱 뜻깊은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