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모든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보물창고
2024년 기획전시 Ⅰ
대사극장: 한국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
대사극장: 한국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
Dialogue Cinema: Great Dialogues from Korean Movies
한 줄의 대사로 기억되는 영화들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말의 힘을 예시한다. 스토리와 인물 성격화, 의미, 정서를 함축한 영화 대사는 매력적인 스토리를 위해 동원되는 문학적 장치다. 사건과 인물,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발상되는 어떤 대사는 거대한 자원을 동원한 장면 연출에 비견할 만큼 위력적이다. 한국영화의 역사를 일별하더라도 영화 속 대사들은 시대와 인간을 드러내는 지도의 역할을 해 왔다. 내러티브 영화의 일반적인 대사 기능을 수행하면서 시대의 조건과 대중 심리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다.
<대사극장: 한국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은 한국인의 마음에 접속해 잊지 못할 인장을 새긴 대사들을 조명하기 위한 전시다. 한 시대의 언어 습관에 대한 반영이자 무의식의 기록으로서 한국영화의 대사를 탐색한다는 것은 그 시대 대중들의 욕망이 가리키는 지점을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근 한국의 대중문화 지형에서 영화 대사의 의미가 묵상되고 있는 시기라는 점도 전시 구상의 단초가 되었다. 각본집, 스토리보드집의 발간 붐으로 표상되는 영화 대사에 대한 관심, 특정 대사의 유행과 패러디는 대사가 영화 관객의 관심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의미를 넘어 대중문화 안에서 영화가 소비되는 양상이 변화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2023년 6월에 발간된 한국영상자료원 매거진 <아카이브 프리즘> 12호 ‘대사극장 - 한국영화를 만든 대사 100’은 1954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영화 100편의 대사를 수록하며 한국영화 70년을 조망했다. 이번 전시는 해당 이슈를 재구성한 확장판이자 관람객들이 영화 대사를 다차원적인 방식으로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전시 형태로 구현한 또 다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대사극장>은 지면과 활자에 갇혀 있던 영화 대사를 스크린 위에 연속 상영하는 가설극장으로 그것들이 남긴 유산을 회고해 보는 기억 극장이다. 시대가 각기 다른 100편의 영화 대사를 한 편의 비디오 에세이로, 활자의 아름다움과 의미에 오롯이 집중하게 하는 무빙 타이포그래피로, 씨네필의 유희적 대사 연기 방식으로 제시하고 재현한다. 그리고 지난 50년간 한국영상자료원이 수집 보존한 시나리오와 이번 전시를 위해 구축한 1,000개 영화 대사 데이터베이스는 관람객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 대사를 향유할 수 있는 즐길 거리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가 한국영화사를 거슬러 한국인을 매혹시킨 영화 대사를 기억하고, 관객의 뇌리에 생생한 이미지를 새기는 영화적인 대사란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공감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영화 대사에 관한 인식의 지평을 활짝 넓혀줄 ‘대사극장’에 오신 당신을 환영한다.
대사극장(비디오, color, 사운드, 19분 30초)
장구한 한국영화사를 철로와 열차를 따라 변해 온 풍경으로 바라본다. 산과 얼굴과 바다와 계곡, 원룸과 오피스텔, 사무실, 학교, 마당, 이제는 없는 옥상, 얼마 전 재개발된 아파트와 완전히 교체된 거리를 배경으로 한국영화의 대사들이 부유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박세영
영화감독. 1996년에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예술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졸업했다. 첫 장편영화로 <다섯 번째 흉추>를 연출했고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
살풀이 한판(타이포그래픽 스톱모션, B/W)
평소 감정을 좀 억누르는 편이라 그런 걸까? 마음속 응어리를 욕설에 담아 질펀하게 풀어내고 싶어졌다. 명주 천을 던져 그 떨어지는 모양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살풀이라는 춤이 있다. 살풀이춤을 내 연기의 메서드(method)로 삼아 명주 천의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화면을 가로 32개, 세로 18개의 서로 연결되는 입구와 출구를 가진 정사각형 타일로 나눴다. 그 결과 관객이 보는 것은 25개의 명주 천 모양 모듈이 반복되는 욕설 대사 스톱모션 영상이다.
박철희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햇빛스튜디오라는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를 열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한글 쓰기의 다양한 방식을 실험하는 것을 즐기며, 직설적인 화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디자이너다.
99개의 의문문(타이포그래픽 서브타이틀, color)
영화 속 의문형 대사는 간혹 스크린을 뚫고 나와 우리의 일상, 집단, 사회, 국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어떤 형태로든 개인이나 사회가 대답하도록 요청하곤 한다. 개인의 일상에 대한 사적 질문부터 이념과 체제에 대한 것들까지, 극도로 다양한 차원의 질문을 리믹스해 2024년,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관객에게 묻기로 한다. 영화의 문맥을 초월한 이 질문들에서 벗어날 방도가 요령부득이라면 차라리 그 요지라도 잠시 숙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컨셉트 & 영상 제작: 프론트도어
독백 집단(모션그래픽, color)
‘독백 집단’(Monologue Collective)은 한국영화의 대사를 짜깁기해 만든, 독백화된 개별 대사들이 서로 대화하는 듯 구성된 꾸러미다. 5개의 독립적인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 ‘여성의 가치 ’ ▶ ‘능력과 본성 ’ ▶ ‘부정적 감정과 체념 ’ ▶ ‘욕망과 관계 ’ ▶ ‘험담과 죽음 ’을 다룬다. 사용한 대사는 모두 여성의 입에서 나왔거나 여성을 향한 말이며 원 대사가 가지고 있던 대화의 맥락, 발화자, 청자, 공간, 시대는 의도·비의도적으로 무시되거나 제거되었고 맥락과 의미가 재부여됐다.
양으뜸
동아시아의 근현대 일상·대중·하위문화를 사랑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인과 코미디의 관계를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워크룸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2018년부터 디자인 스튜디오 ‘콰칭 ’을 운영하며 예술·패션·생활 분야 고객사들과 협업하는 한편 서울시립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모션그래픽 협업: 김을지로
연기된 대사들(비디오, color, 사운드, 8분 10초)
<대사극장> 전시에 즈음해 한국영상자료원이 SNS를 통해 공모한 일반인 대상 대사 연기 응모 영상물을 붙인 편집물이다. 말 그대로 일반인에 의해 ‘연기된 대사’(performed dialogues)로서, 틱톡과 릴스, 쇼츠의 시대에 부응해 영화 대사를 유쾌하게 향유하기 위한 의도로 기획되었지만, 원래의 대사가 대중 속에서 복제·증폭·전복되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전문 배우가 아닌, 일반인의 몸통을 통해 발화된 날것의 감동(?)을 실감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영상 편집: 최고야
삶적인 하나, 죽음적인 하나, 그리고 인생의 하나(종이 위에 실크스크린, 420*594mm)
영화가 말하는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에 대한 관점을 그 대사를 뱉어내는 입의 움직임 통해 표현한 작업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인생의 다양한 시선을 경험한다. 무덤덤한 톤으로 인생을 객관적으로 정의 내리기도 하고, 감정을 섞어 지극히 주관적으로 삶을 돌아보기도 한다. 8개 포스터에 영화의 생각을 전달해 주는 매개체인 ‘입’과 말투에 담긴 몸의 움직임을 담아 보았다. 그것은 입술, 입과 턱 주변의 근육, 혀, 치아의 모양과 함께 발화된 인물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말이다.
이동언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듣고, 쓰고, 읽는지에 주목해 언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사용 방식을 관찰한다.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했고, 지금은 네덜란드 베르크플라츠 티포흐라피에서 학위 과정을 밟고 있다.
협업: SAA
대사의 집, 시나리오
시나리오에는 영화의 모든 것, 장면 번호와 지문, 카메라 움직임과 대사 등 창작자의 작의와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 온전히 담겨 있다. 시나리오는 창작자들이 대사를 통해 스토리를 어떻게 축조하려 했는지 알려주는 설계도 원안 같은 것이고, 그 때문에 독자적인 문학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한국영화의 세포라고 할 수 있는 대사들이 한 줄 한 줄 기록돼 있는 책들, 현장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이 한 장씩 넘기며 고심한 흔적인 역력히 남아 있는 역전의 문서 15점을 한국영상자료원 보존고에서 꺼내 소개한다.
자유만세(1946), 벽을 뚫고(1949), 만추(1966), 기적(1967), 사기왕 미스터 허(1966), 자유결혼(1958), 서울의 지붕밑(1961), 종야(1967), 원점(1967),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 어느 여배우의 고백(1967), 물레방아(1966), 망각(1967), 휴일(1968), 마부(1961)
대사극장 - 한국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서적, 225*297mm, 892페이지)
1946년 <자유만세>(최인규)부터 2023년 <킬링 로맨스>(이원석)까지 한국영화 대사 800개를 수록한 한국영화 대사 모음집
컨트리뷰팅 에디터: 박아녜스, 허남웅, 금동현 / 사진: 임효진 / 북디자인: 양민영
대사 편집기(웹 데이터베이스)
한국영화의 중요한 대사 1,000개를 여러 방식으로 검색하고, 다양한 형태로 출력할 수 있도록 설계한 데이터베이스다. 초 단위로 컷을 편집하거나 미세한 음향을 고르게 조절하고, 빛의 색감과 밝기를 알맞게 제어하는 등 입체적으로 균형이 들어맞을 때 비로소 한 편의 작품이 탄생한다. 이 영화적 행위에 착안하여 ‘대사 편집기 ’를 기획했고, 편집기의 물리적인 특성을 웹상에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관람객은 연도, 캐릭터, 키워드, 배우, 감독, 원작, 각본, 각색으로 이루어진 총 8개의 분류에 따라 정보를 조작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신나리
서울과 독일 브레멘에서 공부를 마치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웹 기반의 시각 실험 콜렉티브 HHHA를 기획 및 운영했으며, 웹과 소통하며 기능적이거나 표현적인 실험을 시도한다. 스튜디오 도구(dogu)에서 생성형 패턴을 활용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대사 DB 에디터: 박아녜스, 허남웅, 금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