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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기획전시 Ⅱ
Moving Portraits 너의 얼굴
‘너의 얼굴’은 감독이자 작가 차이밍량이 영상으로 그려낸 초상화이다. 그 대상은 길거리를 걷다 우연히 마주친 낯선 이이기도, 건물 벽을 사이에 두고 먹고 잠을 자는 우리의 이웃이기도 혹은 2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존경해 온 동료이기도 하다. 피사체에 대한 그의 관찰과 사색은 비단 인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초로의 노인처럼 오랜 시간을 머금고 있는 듯한 나무와 고향을 떠나온 이민자의 외로움의 파편들, 그리고 한때는 누군가의 삶과 추억이 깃든 곳이었지만 지금은 폐허가 된 어느 공간의 공기까지 응시한다.
피사체의 미세한 주름 하나하나에 집중하다가도 표정과 표정 사이, 말과 침묵 사이에서 발현되는 비가시적 이미지를 포착하기도 하고, 때로는 블랙 화면 위로 입혀진 대화 소리만으로도 피사체의 이미지를 그리기도 한다. 그의 이 움직이는 초상은 깊은 눈으로 대상을 응시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미지의 중첩과 충돌, 새롭게 파생되는 이미지를 영상으로 담아 그들이 가진 혹은 숨겨진, 어쩌면 그들조차 알지 못했던 정서를 보는 이에게 전달한다.
‘너의 얼굴’은 국내에서는 처음 개최되는 그의 단독 전시이다. 2012년부터 2024년 가장 최근까지 작업한 7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극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정형화된 시스템이 아닌 또 다른 방식으로 그가 그려낸 사람과 세상에 관한 초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즐거운 일일 것이다.
차이밍량 Tsai Ming-liang
1957년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난 차이밍량은 1977년 대만으로 이주해 중국문화대학을 졸업했다. 1992년 데뷔작 <청소년 나타>로 제4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 두 번째 장편영화 <애정만세>(1994년)로 제5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대만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세계적 인정을 받았다.
이후 <하류>(1997년)로 제4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떠돌이 개>(2013년)로 제7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데이즈>(2020년)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테디상 특별심사위원상을 수상하였으며, 연출한 모든 장편영화가 세계 3대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세계적 거장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공연, VR, 그림, 설치 작업, 전시 등 다양한 방면으로 높은 수준의 창작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2013년 상업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그는 자신만의 예술적 실천 방식을 개발하고 확장하고 있다. 2009년 연출한 Face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후원하고 아카이빙한 최초의 영화이며, 국립대만미술관, 베니스 비엔날레, 파리 퐁피두 센터 등에서의 전시를 통해 세계적 호평을 받으며 장르를 넘나드는 선구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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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앤드 제로 One & Zero, 2016, 1h 19m 20s
차이밍량 감독은 10년 전부터 산속에 버려진 폐허를 수리해 살고 있다. 비슷한 시기 그의 페르소나인 배우 이강생은 극심한 경추 통증으로 배우 생활을 그만두고 싶어 했다. 감독은 그런 이강생의 얼굴과 집 담벼락 너머에 보이는 하늘, 나무 그리고 버려진 폐가 등 자신의 주변을 기록했다.
나무 The Tree, 2021, 13m 30s
100세를 맞이한 배우 창펑. 차이밍량 감독은 그를 나이가 들수록 더욱 아름다워지는 오래된 나무로 묘사한다.
시닝 공공 주택 Xining Public Housing, 2024, 1h 2m 15s
1983년 타이페이 시먼 지역에 건립된 시닝 공공 주택은 1,000명이 넘게 거주하는 대단위 공공 주택 단지이다. 차이밍량 감독은 1989년 자신의 첫 번째 드라마와 장편영화 <구멍>(1998년>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감독은 재건축을 위해 곧 철거를 앞둔 건물의 일상과 여전히 그곳에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조용히 관찰한다.
※ 해당 작품은 전시 연장 기간(9.19-9.28)부터 매일 상영합니다.
너의 얼굴 Your Face, 2018, 1h 17m 15s
13명의 얼굴을 빅 클로즈업으로 관찰한다. 이들은 길거리를 걷다 자신에게 영감을 준 낯선 이들과 감독의 어머니, 그리고 수십 년 동안 함께 작업한 이강생 배우이다.
좀처럼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 차이밍량 감독이지만, 이 작품을 위해 세계적인 뮤지션 류이치 사카모토에게 요청하여 20년 만에 음악을 삽입했다.
변신 Transformation, 2012, 33m 50s
갤러리의 요청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차이밍량 감독의 페르소나 이강생 배우가 다른 인물로 변신하는 과정을 담았다.
가을날 Autumn Days, 2015, 23m 50s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스크립터였던 노가미 테루요를 기록한다. 그녀와 30년 넘게 우정을 쌓아오고 있는 차이밍량 감독은 어느 날 그녀를 기록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촬영을 하기로 한다.
데이즈의 파편들 Days Fragments, 2020, 55m 10s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테디상 특별심사위원상 수상작 <데이즈>(2020년)는 차이밍량 감독에게는 전환점과 같은 작품이다. <떠돌이 개>(2013년) 이후로 전시, 공연, 영상 작업에 더욱 집중하던 그는 <데이즈>로 장편영화로 돌아왔으나, 스토리텔링의 틀에서 더욱 자유로운 모습이다.
<데이즈의 파편들>은 촬영되었지만 영화 <데이즈>에서 사용하지 않은 영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주연 배우 아농 홍황시가 통화하는 모습과 그의 기숙사 근처 도로변에 걸린 비닐 봉지를 관찰한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아농의 대화를 자막으로 표기하지 않으며 보는 이가 생경함을 그대로 느끼기를 원했다.</face></f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