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순진
사도 역의 유아인과 혜경궁 홍씨의 문근영, 카메오로는 소지섭까지 나온다고?
오승현
감독이 <소원>(2013) 때부터 한 캐스팅 방법이라는데, 핵심적인 캐스팅을 먼저 하고 그 캐스팅과 궁합을 봐서 다음 배우를 캐스팅하는 방식이다. 영조가 캐스팅이 되고 난 후 이제 20대 배우를 캐스팅해야 하는데, 그 적격자가 유아인이 된 거지.
송순진
<사도> 캐스팅의 기준은 송강호와 붙였을 때 잘 싸울 것 같은 느낌인가?
오승현
지든 안지든, 지금은 유아인이 아닌 전혀 다른 배우는 상상할 수 없다. 이 친구가 너무 잘했다. 유아인도 <베테랑>을 찍고 있을 때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너무 좋다고 하고 싶다고 강력하게 의지를 표현했다. 또 언젠가 사도가 다시 나올 것 같지 않다고도 하더라. 사도세자 연기는 이제 한 명뿐이다, 그래서 하고 싶다는 거다. 정조든 영조든, 어떤 역사적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그 시대, 그 나이 때 딱 한 번뿐이잖나. 결과적으로 유아인은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숙종도 했고 <사도>에서 사도도 연기했으니, 할아버지도 하고 손자도 한 셈이다(웃음).
송순진
문근영은 <사랑따윈 필요없어>(2006) 이후 굉장히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한다.
오승현
송강호, 유아인을 캐스팅한 후 비로소 문근영을 캐스팅 했는데, 사실 혜경궁 홍씨가 영화 전면에 나와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사람이 아니다. 미리 배우와 매니저에게 말한 내용이기도 한데, 그래도 우리 영화에서는 꼭 필요하다고, 도움을 달라고 해서 캐스팅 했다. 문근영도 혜경궁 홍씨를 꼭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지금 아니면 안 할 것 같다면서 비중에 관계없이 출연했다. 미안한 게 영화를 보면 영조와 사도만 보인다. 다른 인물은 뒤에서 받쳐주고 밀어주는 역할 밖에 없다.
송순진
<사도>에서 기증하는 소품이 세 가지 의상이다.
오승현
영조의 용포와 사도가 입는 무명옷, 그리고 혜경궁 홍씨의 평상복이다. 영조의 용포는 영화에서 늘 입고 등장하는 옷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의미를 부여하자면 아들 죽인 아비가 입었던 옷이다. 두 번째 기증품은 사도의 평복인 무명옷이다. 사도가 무명옷을 마치 상복처럼 입고 살았다고 한다. 영조가 호출할 때만 그 위에 용포를 걸치고 나타났다. 사도는 의대증이 있었다. 옷을 입으면 갑갑해서 옷 입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병이다. 그런데 옷 때문에 영조가 꼬투리를 많이 잡았고 사도는 사람을 많이 죽였다. 자기 후궁도 죽이고 그 아들도 연못에 던져버리고, 거의 100명 가까이 죽였다고 한다. 죽을 때도 무명옷을 입고 갇혀 죽은 것 같다. 또 혜경궁 홍씨의 의상은 본인 입으로 늘 검소하게 살아온 사람이니까 그런 콘셉트에 맞춰 제작했다.
송순진
의상과 소품, 세트의 콘셉트가 절제라고 하던데.
오승현
이런 비극에 화려한 색깔을 입힌다는 게 이상하잖아.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다, 그것도 왕가에서 아들을 죽인다? 이건 유럽이나 어느 나라 역사를 찾아봐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얘기다. 우리야 널리 알려진 우리 역사이기 때문에, “아, 그런 일이 옛날에 있었대. 뒤주에 가둬 죽였대”라고 쉽게 얘기하지만 만약 유럽 역사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영화 수십 편이 만들어졌을 것이다(웃음). 이런 이야기에 화려한 배경을 입히면 그 화려함이 배우들이나 이야기를 묻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빼는 걸 콘셉트로 잡았다. 아니, 미술 감독이 처음부터 그렇게 콘셉트를 잡았다. 미술감독, 의상실장, 분장, 특수분장 등 관련 팀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하는데 빼는 것, 절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인물의 방에도 포인트만 주자고 했다. 옷장, 문갑, 화장대 다 놓지 말고 간단하게. 그래서 이야기와 드라마와 인물에 집중하자. 그러니까 결국 본인들이 뒤로 후퇴한 거다. 대신 한정된 공간을 심도 있게 보여주기 위해서 좋은 장비를 썼다. 애너모픽이란 렌즈가 있는데, 영상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른 느낌으로 보여준다. 지금 D.I 해서 나온 화면을 보고 왔는데 아주 만족스럽다.
송순진
절제를 콘셉트로 한 덕분에 소품 제작비가 절약되진 않았나?
오승현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런 콘셉트가 생기면 안 들어가는데 더 들어가는 경우가 생겨서 결과적으로 비슷하다. 아니, 화려하게 하는 게 어쩌면 더 쉬울 수도 있다. 소품이 너무 잘 보여서 뭘 하더라도 제대로 된 걸 만들어야 하니까. 글씨 하나를 하더라도 정식으로 의뢰해서 가져왔고 용포나 혜경궁의 의상에 들어간 자수도 일일이 손으로 만든 거다. 한국에서 하면 너무 비싸서 베트남으로 보냈는데 수공으로 한 달인가 두 달 걸렸다. 재봉틀로 ‘드르륵’ 박아서 화려하게 할 수도 있지만 손으로 하면 색이 ‘쑥’ 들어간다. 비교치가 없으면 아무 상관없지만 비교해 보면 금방 보인다.
오승현
뒤주는 세 개 만들었다. 유아인이 들어가서 촬영할 것과 겉에서 보여주는 것 두 개. 들어가서 촬영한 것은 한쪽 면이 없는 것이고 겉면을 보여주는 것은 무게감을 줬다.
송순진
이준익 감독의 작품들은 물론이고 그 밖에도 <궁녀>(2007) 등 타이거 픽처스는 유독 사극을 많이 제작했다.
오승현
우리 회사가 역사물에 관심이 많다. 소재가 많기 때문이다. 또 실화를 바탕에 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있는 얘기를 드라마틱하게 풀면 평가도 받고 흥행도 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사극을 한다. 이준익 감독도 많이 하다 보니 편하고(웃음). 현대극을 하다 보면 장르에 매이게 된다. 또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90% 이상이 소재인데,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 들어간다는 게 어렵다. 들어간다 해도 워낙 개성의 시대라 한계가 있다고 본다. 또 현대극은 도심에서 찍어야 하는데, 그럼 정신 사납다. 사극은 딱 우리만의 공간에서 찍으니까 집중도가 굉장히 높다는 장점도 있다.
송순진
씨네월드, 영화사 아침과 공동제작도 많이 했는데.
오승현
이준익 감독, 조철현 감독, 고(故) 정승혜 대표 세 분이 영화 동지다. 각자 회사를 하나씩 가지고 계셨고 그게 씨네월드, 타이거 픽처스, 영화사 아침이다. 이 세 개를 모으면 ‘리퍼블릭 오브 시네마’다(웃음). 같이 모여서 한 작품만 하긴 그러니까 각자 기획해서 거의 공동 제작한다. <사도>도 씨네월드와 공동제작이다.
오승현
이준익 감독이 열한 번째 작품을 찍고 있다. <동주>라고 시인 윤동주를 다룬 작품이다. 그냥 노는 사람이 아니다. 너무 심심해서 영화를 찍는다(웃음). 그러고 보니 <사도>가 딱 열 번째 작품이다. 또 <몽유도원도>라고, 전 타이거 픽처스 대표였던 조철현 감독이 CJ E&M과 올해 찍으려고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 지금 시나리오 단계인데 계속 고치고 있다. 이건 완전히 정극이다. 주인공은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인데, 그림 <몽유도원도>를 중심으로 권력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할 참이다. 약간의 판타지도 들어가 있다.
오승현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재미있는 영화, 소재가 훌륭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준비 중인 것 중에 사극도 있지만 현대극도 있고 공상과학(SF)도 있다. 원작들을 계속 발굴하고 판권 구매도 열심히 한다. 작가들 만나서 오리지널 시나리오도 준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공포영화를 싫어하고 휴먼이나 드라마에 집착을 하는 편이다. 또 코미디도 좋다. 근데 공포, 멜로, 에로에는 영 소질이 없다. 그건 내가 잘 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