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순진
14년간의 제작기간이 내내 화제였다. 그 시간을 증명이라도 하듯 시나리오가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졌다.
조정래
(기증한 시나리오집의 순서를 맞춰보며) 나도 이렇게 펼쳐보기는 처음이다. 이거 사진 한 장 찍어놓을까?(웃음) 그러니까 순서를 맞춰보면, 초본을 가지고 각색을 한 첫 번째 버전이 있고 여기서 꽤 수정이 많이 들어간 두 번째 버전이 있다. 이후에 낸 것들은 오디션과 리허설용이다. 여기 한자로 이름을 적은 것이 내 것이다.(웃음) 지금 기증품 중에 일본어 대본은 없는데, 시나리오집을 영어, 일어, 중국어 등 5개 국어로 번역해 만들었다.
조정래
투자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 영화는 전 세계가 함께 볼 수 있도록 만들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 여러 가지 언어로 만든 것이다. 특히 영어, 일어, 중국어로 번역한 시놉시스는 후원을 받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시나리오집은 물론이고 홍보물도 모두 언어별로 제작했다. 이렇게 쭉 늘어놓고 보니 여기에 ‘귀향’의 역사가 다 들어있는 것 같다. 너무 귀한 자료들인데 우리 사무실이 공장처럼 되어 있다 보니 정리를 잘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한국영상자료원의 연락을 받았다. 너무 감사하다.
송순진
‘귀향’은 감독 자신이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을 본 그날 밤 꿈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당시에도 오랫동안 할머니들과 교류해온 상황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역시 영화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두렵지 않았나?
조정래
주변 분들이 걱정을 많이 해주셨는데 나는 꼭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뿐 아니라 많은 영화계 선배님들이 위안부와 생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해오셨다.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1999)와 추상록 감독의 극영화 ‘소리굽쇠’(2014)가 그렇다. 임선 감독의 ‘마지막 위안부’(2014)라는 영화도 있다. ‘귀향’은 그런 선배들의 뒤를 따라 간 거다. 단지 “소재 자체가 세다”, 이런 걱정을 많은 분들이 하셔서, 그 걱정을 어떻게 다른 생각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 컸다.
송순진
그 고민의 과정이 버전 별 시나리오에 다 녹아있을 것 같다.
조정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증언집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시나리오 작업에서 가장 큰 이슈였다. 증언 기록에서 벗어나게 되면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받게 된다고 봤다. 그러나 증언을 이야기 속에 어떻게 녹이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팩트에 작가의 영화적 상상력을 접목해서 현실감 있게 그린다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굉장히 첨예한 역사적 문제이기 때문에 중간 중간 나눔의 집에서 자문을 받기도 하고 수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반영했다. 시나리오는 총 다섯 번 정도가 크게 바뀌었고 그 이후에는 디테일에 집중했다.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여러 분들과 토론을 거쳐 고쳐나갔다.
송순진
시나리오 수정을 거치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것들도 있지 않았을까?
조정래
처음부터 증언집을 많이 보고 시나리오를 썼기 때문에 오히려 사실을 더 보강해나가는 방향이었던 것 같다. 중간에 다시 증언집을 읽었는데, 그때 안 보이던 부분들이 보이기도 하더라. 기본적으로 ‘귀향’은 산 자의 기억 속에 녹아있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그 포인트에 대해 오해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송순진
영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현재를 살아가는 소녀 은경을 통해서 과거 인물들의 이야기를 끌어오는 이야기 구조다.
조정래
이 이야기 구조는 2002년에 최초로 썼던 시놉시스 그대로다. ‘태워지는 처녀들’에서 불타고 있는 피해자 여성들이 비디오를 거꾸로 감듯이 되살아나서 하늘을 날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이 시놉시스로 완성됐다. 그 분들을 고향으로 모셔온다는 게 핵심이다. 영화 한 번 상영할 때마다 영혼 한 분이 돌아온다는 메인 콘셉트가 만들어진 것도 그 때고. 말하자면 “영화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분들의 영혼을 모셔오려면 현재를 사는 캐릭터, 은경이란 캐릭터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제사를 지내는 은경이 바로 나다.
송순진
현재의 은경도 성폭행 생존자다. 정민과 같은 위안부 피해자들과 같은 고통으로 연결된다. ‘귀향’은 피해자와 피해자의 영혼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는 영화다.
조정래
연구자들은 일본 성노예 문제가 아동 성폭력 문제와 맞닿아있다고 말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흔히 “내가 뭔가 죄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 때문에 깊은 죄책감을 안고 있다. 그런데 아동성폭력 피해자들 역시 “내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가해자가) 그랬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례를 봤는데, 가해자인 아버지가 준 물건 하나를 평생 동안 지니고 살면서 자신이 사랑받았다는 증표로 삼고 있었다. 이건 굉장히 심각한 트라우마다. 그런 공통점, 연결 지점이 영화 속에 녹아들기를 바랐다.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분노나 응징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그런데 오랫동안 할머니들을 뵈니까,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거기서 피해자들이 서로를 보듬는 방식이 되어야한다는 실마리를 얻게 된 것이다. 국민들이 영화를 보고 분노하는 것보다 일단 공감하고 알게 되는 것이 위안부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송순진
아이러니하게도 2016년 상반기에 ‘귀향’이 대중적 지지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혐오 범죄가 눈에 띄게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조정래
지금 한국사회는 사람들 각자가 불평등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내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소통의 부재, 충동 조절 장애, 공감 능력 부족 문제다. 길을 걸어도 스마트 폰만 들여다보고 만나서 술을 먹어도 자기 얘기만 하는 느낌이다. 사람의 목숨 값도 형편없이 하찮아진 시대다. 그런 시대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과 공포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쉽게 잊힐 사람이라는 두려움,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두려움 말이다. 그런 대중들이 폭력성이 ‘귀향’을 향하기도 했다. 가령 위안부 문제는 더 이상 얘기하지 말자, 옛날 일이니 이제 잊어야 하지 않겠냐는 주장의 근거가 됐던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통해서 그 안에 한 소녀가 있었다, 20만 명 중의 한 명이었던 그 소녀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인생이었지 않았나, 하고 영화가 질문을 던졌다. 거기에 공감을 하게 되면 관객들이 다시 자기 자신에게 신경을 쓰고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프지만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까 말했듯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의식의 변화 중 가장 첫 번째 단계가 공감이다. 이런 일이 있었구나, 왜 나는 몰랐지? 너무 불쌍하다. 이런 인간적인 공감이 없이는 어떤 곳으로도 전진할 수 없다.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열기가 그렇게나 뜨거웠던 것도 이제까지 일어났던 비극적인 일들에 공감을 느끼지 못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더해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송순진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던진 작품이지만 감독 개인에게도 무척 중요한 지점이 됐을 것이다. 본인에게 ‘귀향’은 어떤 영화인가?
조정래
나에게는 지금 ‘귀향’이 흥행에 성공한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귀향’을 통해 얻은 가장 의미 있는 성과는 다른데 있다. 나는 영화가 역사, 그리고 사회와 동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 이야기고 영화인데, 이번엔 다소 직접적으로 ‘귀향’을 만들었다. 그런데 대중들이 ‘귀향’을 단순한 영화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위안부와 관련된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 해결되지 않는 사죄와 배상 문제까지 총체적인 이해와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문화적 도구, 문화적 증거로 쓰였다. 더 나아가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고 우리가 사과를 받아야한다는 것보다도 할머니들을 이해하는 것, 지금 이 시간에도 반인권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으로 관객들의 생각이 뻗어나가길 원한다. 그것 때문에라도 전 세계에 이 영화가 좀 더 확산됐으면 싶다. 그래서 사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송순진
해외에서 이미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조정래
현재진행형이다. 영화 개봉에 앞서 작년 12월 7일에 나눔의 집에서 먼저 할머니들께 영화를 보여드리고 11일부터 전국 13개 정도 되는 도시를 돌면서 후원 시사회를 열었다. 이후에 미국 뉴저지부터 LA, 애리조나, 브라운 대학교 등을 돌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오사카, 요코하마에서 후원시사회를 했다. 한국, 미국, 일본에서 가장 많이 후원을 해주셨다. 그러고 나서 개봉을 했는데 후원 상영회의 열띤 반응이 개봉 시 큰 역할을 해줬다. 뿐만 아니라 4월 8일부터 25일까지 생존자 할머니들을 모시고 미국에 가서 ‘귀향’ 상영회와 생존자 할머니들의 증언회, 그리고 그림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다. 예일대, 콜롬비아대, 텍사스의 SMU 대학 등 미국 동부와 서부를 오가면서 상영회와 증언회를 했는데 현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와 관객들이 많이 오셨더랬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에서 다시 초대장이 왔다. 세계 최초의 위안부 기념비가 있는 미국 뉴저지 주의 팰리세이즈 파크에서 후원 상영회를 했었는데, 그 때 만난 시장, 시의원 등 정치계 인사들이 다시 초대한 것이다. 벌써 10군데가 넘는 곳에서 상영회와 증언회를 열기로 되어있다.
송순진
해외에서 이토록 반응이 뜨거운 이유가 뭘까?
조정래
가장 많은 관객 반응이 “위안부 문제를 알게 해줘서 고맙다”는 것이었다. 미국사회에서 위안부 문제가 생각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를 통해서 실체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거의 처음 가지게 됐고, 그런 점에서 더 충격을 받는 것 같다. 현지 관객들의 지지가 증언회 등을 열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리고 점점 더 확산되는 모양새다.
송순진
미국에서는 이미 개봉을 했고, 대만과 중국에도 판권이 팔렸다. 개봉은 언제 하나?
조정래
아직 개봉까진 모르겠고 판권만 팔렸다. 그런데 일본군 위안부의 제 2 피해국가가 대만과 중국이다. 그곳에도 많은 피해자들이 생존해 계신다. 그러니 대만과 중국에서도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다. 외국에는 위안부 소재 영화가 거의 없다고 하더라. 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처럼 투자가 이뤄지기 힘들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는 유대인들이 많이 만들어냈는데, 위안부 문제만큼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아쉽다. 많은 분들이 보시고 계속해서 이런 소재의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국내에서는 요즘엔 투자도 좀 되고 여러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더라. 다행이다.
조정래
다들 반대하는데 내가 자비를 들여서 무료 상영을 하려고 한다. 극장 대관을 하고 무료 상영으로 사람들을 모아서 배지 같은 기념품을 판매해 현지에서 일하고 있는 위안부 문제 활동가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송순진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사실 가장 무서운 관객이 아닌가?
조정래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너무너무 애썼다면서 많이 우셨다. 그런데 그렇게 우시고도 영화를 10번도 넘게 보시더라. 당신들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시고 또 당신들이 가진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픈데,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송순진
14년 동안 ‘귀향’을 준비해오면서 ‘두레소리’ ‘파울볼’(2015) 등의 영화를 선보였다. 그런데 가장 ‘귀향’과 맞닿아 있는 작품은 오히려 ‘귀향’이 기획되기 전인 2000년 작 ‘종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34분짜리 단편 ‘종기’에서도 84세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조정래
어릴 때 시골에서 살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그 분들이 겉모습은 나이를 먹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세월 속에서 사람이 늙는 것은 금방이지만, 그렇다고 정신까지 늙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생각이 내 영화 전체에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사람은 결코 늙지 않는다, 욕망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철학 말이다. ‘종기’는 자신이 살았던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화해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정리하느냐의 문제를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해결하려는 이야기다.
송순진
필모그래피에서 공통점을 찾아보니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전통문화를 핵심 소재로 삼고 있다.
조정래
내가 92학번인데 임권택 감독님의 ‘서편제’(1993)를 보고 너무 좋아서 그때부터 국악에 푹 빠졌다. 급기야 지금은 판소리 고수이기도 하다.(웃음) 그렇다보니 ‘파울볼’을 제외하고는 계속 영화에 그런 취향이 녹아난다. 다음 영화는 아예 대놓고 국악 영화를 해볼 참이다.
조정래
2006년인지 2007년인지, 당시 영화진흥공사 제작비 지원 프로그램에 응모했다가 떨어진 작품이 있다. 조선시대 광대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광대들은 천민이었지만 민족의 전통음악을 계승, 발전, 창작했던 분들이다. 그런 걸 중심으로 잡되 가족이 복원되는 이야기인데, 너무 만들고 싶다. 초안을 많이 고쳐서 2012년에 시놉시스를 다시 썼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써놓고 보니까 어쩌면 ‘귀향’ 이후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더라. 올해 광복절에 맞춰 ‘귀향’ 한정판 DVD를 출시하는데, 그때 추가로 넣을 에필로그 영상 촬영에 맞춰서 ‘광대’ 티저 영상을 찍을 예정이다. 목표는 내년 가을 정도에 촬영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귀향, 14년간의 제작기’라고 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그건 내년에 영화 형식으로 선보여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