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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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된 영화유산

영웅

  • 감독 윤제균
  • 원작 한아름
  • 각색 윤제균
  • 출연 정성화,김고은,나문희
  • 촬영 조상윤
  • 조명 신태섭
  • 편집 김선민
  • 미술 양홍삼
  • 의상 심현섭
  • 제작사 (주)제이케이필름
어머니 ‘조마리아’(나문희)와 가족들을 남겨둔 채 고향을 떠나온 대한제국 의병대장 ‘안중근’(정성화).
동지들과 함께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으로 조국 독립의 결의를 다진 안중근은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3년 내에 처단하지 못하면 자결하기로 피로 맹세한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은 안중근.
오랜 동지 ‘우덕순’(조재윤), 명사수 ‘조도선’(배정남), 독립군 막내 ‘유동하’(이현우), 독립군을 보살피는 동지 ‘마진주’(박진주)와 함께 거사를 준비한다.

한편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이토 히로부미에게 접근해 적진 한복판에서 목숨을 걸고 정보를 수집하던 독립군의 정보원 ‘설희’(김고은)는 이토 히로부미가 곧 러시아와의 회담을 위해 하얼빈을 찾는다는 일급 기밀을 다급히 전한다.

드디어 1909년 10월 26일,
이날만을 기다리던 안중근은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전쟁 포로가 아닌 살인의 죄목으로, 조선이 아닌 일본 법정에 서게 되는데…

누가 죄인인가, 누가 영웅인가!
(출처:kobis)

(주)제이케이필름 기증 <영웅>의상
안중근(정성화) 의상 안중근(정성화) 의상
안중근(정성화) 의상 안중근(정성화) 의상
조마리아(나문희) 의상 조마리아(나문희) 의상
설희(김고은) 의상 설희(김고은) 의상
설희(김고은) 의상 설희(김고은) 의상

심현섭 의상감독 인터뷰
윤제균 감독이 연출한 <영웅>은 2009년 시작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동명의 뮤지컬을 스크린에 펼쳐낸 영화다. 이 이야기는 1909년 10월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무비를 사살한 사건을 소재로 한다. 실제 사건을 다루고, 뮤지컬 장르이기에 촬영 현장에서 라이브로 녹음했던 뮤지컬 영화라는 점에서 배우도, 제작진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왕의 남자> <궁녀> <관상> <자산어보> 등 유독 사극을 많이 했던 심현섭 의상감독은 안중근 의사를 영화로 다룬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JK필름에 의상감독을 맡고 싶다는 의사를 전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신작 촬영 때문에 정신 없는 그를 만나 <영웅>을 만나게 된 계기부터 물었다.
김성훈
윤제균 감독으로부터 시나리오를 받아 읽었을 때 <영웅>은 의상감독으로서 어떤 도전이었나.
심현섭
보통은 작품이 나를 선택하는데 이 영화의 경우, <영웅>이라는 영화가 기획된다는 내용의 어떤 기사를 보고 제작사를 알음알음 알아본 뒤 전화를 드렸다. <영웅>의 의상을 맡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다행스럽게도 함께 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합류한 경우라 내게는 나름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다.
김성훈
<영웅>의 어떤 면 때문에 먼저 하고 싶다고 제안했나.
심현섭
좀 긴 얘기가 될 수도 있는데, 대학 시절 패션 디자인학을 전공했고, 졸업한 뒤 곧바로 공연 의상 일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영화나 드라마 의상은 솔직히 관심이 없었다. 대학 연극반에서 배우로서 자질은 없으니 전공을 살려 무대 의상 스탭이 되려고 했고, 그 일을 하던 과정에서 우연찮게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감독 장선우), <예스터데이>(2002, 감독 정윤수)에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참여해 특수 의상을 제작하게 됐다. 내 본업은 공연 의상이라고 약간 골수 분자처럼 생각하고 있었을 때지만, 어렸을 때라 가난했고, 돈을 벌기 위해 영화 의상 일을 하게 됐다. 그렇게 참여한 <예스터데이>는 흥행이 되지 않았는데, 극장에서 거의 혼자서 그 영화를 보다가 공연 의상만이 내가 하고 싶은 장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의상이라고 하면 소극장과 대극장 공연으로 크게 구분한다면, 영화라는 장르는 한 영화 안에 앵글 사이즈에 따라 소극장과 대극장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매체인 것 같았다. 거기다가 클로즈업숏도 부감숏도 360도 앵글숏도 다양한 사이즈의 숏으로 의상을 표현할 수 있으니 무대 의상에서 장르를 좀 더 넓혀봐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영화로 전업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못했지만. 공연이 들어가기 전까지만 디자인을 하면 되는 무대 의상과 달리 영화는 호흡이 되게 길지 않나. 프리 프로덕션에서 의상 디자인을 설계하고, 제작해서 프로덕션 과정에서 함께 촬영해야 하니 공연 스케줄과 안 맞기 시작했고, 영화 제안들이 조금씩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전업하게 됐다. 한편으로는 되게 아쉬운 마음도 남아있었다. 또 운좋게도 SF물(<예스터데이>)로 영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영화를 하면 창작물을 좀 더 섬세하고 편하게 작업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그 창작물 장르 중 하나가 뮤지컬이었다. 언젠가 뮤지컬 장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알다시피 한국도 외국도 뮤지컬 영화가 많진 않잖아. SF물도 최근에서야 조금씩 늘기 시작했고. 대부분 현대물이더라. 그런데 현대물은 개인적으로 성이 안 찼다. 그런 아쉬움을 가진 채 20년 가까이 일을 하다가 우연찮게 <영웅>이라는 뮤지컬 영화가 들어간다는 내용의 기사를 만난 거다. 긴 기사도 아니고, JK필름이 뮤지컬 영화를 기획한다는 내용의 단신이었는데 숫기도 없고 아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지만,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몰라도 그 작품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김성훈
그렇게 만난 <영웅>의 시나리오는 어땠나.
심현섭
원작 뮤지컬이 10년 이상 수십차례 공연했었고, 한국 창작 뮤지컬로 굉장히 유명했던 작품이라 전반적인 내용은 다 알고 있었다. 영화의 미쟝센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공연처럼 춤은 없지만 그럼에도 라이브로 노래를 부른다는 점에서 뮤지컬 영화인 건데, 그러다보니 공연처럼 의상을 설계하는 것도 애매해서 긴 시간 동안 윤제균 감독님과 많은 고민과 대화를 나눴다.
김성훈
그래서 두 분이 많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무엇이었나.
심현섭
프리 프로덕션 기간 일주일마다 회의를 했었다. 윤 감독님께서 이 영화만큼은 상업적으로, ‘국뽕’처럼 접근하지 말고, 진솔하게 대하자고 말씀하셨다. 리얼리티를 구축하기 위해 옷에 멋을 부리지 말고, 새옷으로 설정하지 말자. 그 시대가 가진 아픔과 애환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고증도 최대한 철저하게 하되, 상징적으로 표현해야 할 장치를 최소화하자는 게 감독님께서 정한 이 영화의 원칙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의상감독으로서 더 고?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안중군 의사께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진도, 영상도 아직 남아있지 않나. 그가 입은 의상의 색이 기록으로 남았는데, 그 색을 그대로 복원할 건지, 아니면 영화와 사건 그리고 캐릭터에 맞게 재해석을 할 건지에 대한 고민도 매우 컸다. 재해석을 하더라도 극단적인 재해석도 애초에 불가능했고. 우리나라의 3대 영웅 중 한 분이었으니 잘못 해석하면 예민해질 수 있었으니까.
김성훈
그런 맥락에서 주인공 안중근(정성화) 의사의 의상을 어떻게 보여주고자 했나.
심현섭
단순히 안중근 의사의 의상 한벌만 놓고 고민한 건 아니고, 독립군 전체의 톤을 만들어가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할 수도, 또 복잡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무대 의상을 먼저 시작해서 그런지 몰라도 여러 사람들이 다 같이 있을 때 전체적인 톤앤매너나 컨셉을 먼저 정하는데,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이기에 무대 방식으로 접근해보았다. 실제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저격할 때 입었던 코트의 색이 블랙인데, 우리가 상상하는 블랙이 꼭 하나는 아니라는 전제를 두었다. 네이비 컬러도 역광에선 블랙으로 보일 수도 있고, 해질녘에는 레드 컬러가 섞인 블랙을 볼 수도 있고. 그렇게 네이비색 코트 안에 되게 짙은 레드톤 계열인 대추색톤 니트를 입혀 태극을 연상시키도록 했다. 그 안에 입은 셔츠를 내추럴 컬러로 설정한 건 우리나라 영토를 뜻한다. 이야기의 후반부인 법정 시퀀스에서 안중근 의사와 독립군 동지들이 나란히 있는 모습은 검은색, 네이비색 톤의 코트 안에 브라운톤, 그린톤 같은 색을 배치해 한국 영토 안의 국민이라는 느낌을 부여하고자 했다.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대한독립군 육군 중장 안중근이다” 같은 대사와 맞물리는 비주얼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또, 안중근 의사와 독립군들이 만두가게에서 있을 때 그와 만나는 여성인 마진주는 치파오를 입었지만, 안중군의 네이비색 컬러와 맞물렸을 때 태극의 형태를 의도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김성훈
전반적으로 <영웅> 속 등장인물들의 의상은 톤이 다운된 느낌이 있더라.
심현섭
의도적으로 톤을 다운시켰다.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와 감정을 그려내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그렇게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 약간은 이분법적인 논리도 작용한 건, 당시 기득권 세력은 일본이었고, 반대로 조선은 약자이지 않았나. 강자에게는 매우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부여하려고 했던 반면, 피해자인 조선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내추럴하고, 그 안에서 간지를 최대한 내보려고 했었다.
김성훈
우덕순(조재윤), 조도선(배정남), 유동하(이현우) 등 독립군 동지는 코트 색도 조금씩 다르고, 안에 입은 셔츠나 니트도 조금씩 달리 표현했지만, 이들이 한데 모인 숏을 보면 독립군 동지라는 관계와 연대를 표현하는 듯하다. 파란색, 빨간색을 활용하면서 태극기를 연상하게 하기도 하고. 독립군들을 표현할 때 어떤 고민을 했나.
심현섭
당연히 캐릭터마다 조금씩 변주를 주었지만, 법정신만큼은 이들이 우리와 함께 한민족이라는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다. 조도선의 경우 활동적이고 코믹한 면모가 있어서 의상을 통해 그걸 좀 더 살리고자 했고. 마진주는 일부러 한국 의상을 안 입혔고, 중국의 치파오나 일본의 기모노를 입혔다. 그녀가 일하는 만두가게 자체가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한 위장술이기도 했고, 나라를 잃은 아픔을 마진주라는 여성 캐릭터를 통해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싶기도 했다. 마진주의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김성훈
김고은씨가 연기한 독립군 정보원 설희는 한복, 기모노는 이 영화에서 컬러가 다양한 의상들을 선보인다. 설희가 입은 한복과 기모노를 설계할 때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심현섭
한복은 궁녀여서 고증적인 측면으로 설계했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접근하기 위해 위장했을 때는 겉으로 굉장히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보여주는 게 중요해서 예산을 많이 투입해 고급 실크 소재로 제작했다. 옷에 새겨진 문양도 일일이 외국에서 자수 작업으로 넣은 거다.
김성훈
나문희 선생님이 맡은 조마리아 여사의 한복은 어떻게 표현한건가.
심현섭
조마리아 여사가 나중에는 독립운동도 하셨는데, 의상감독으로서 조마리아 어머님을 그냥 조선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어머니를 떠올렸을 때 물론 무서운 모습도 간직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모습이지 않나. 화사하진 않지만, 부드러운 내추럴 톤의 한복을 만들었다. 일본이 아무리 짓밟아도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김성훈
나문희 배우가 의상을 피팅했을 때 그 모습이 어땠나.
심현섭
큰 어른이셨고, 다른 작품에서 한복도 많이 입으셨으며, 작품에서 만난 건 처음이라 처음에는 선생님이 어렵고 무서웠다. 어떤 의도로 제작했는지 설명을 드렸었다. 조마리아 여사는 실용적인 측면을 강조해 일반 양반 여성의 치마 길이보다는 좀 짧게 했다던가, 한복을 부드러운 톤으로 정한 이유도 설명드렸었다. 다행히도 선생님께서 그 의도를 알아주셨다.
김성훈
이토 히로부미를 포함한 일본군 의상을 설계할 때 어떤 고민을 했나.
심현섭
이토 히로부미는 다소 이중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의도적으로 사치스럽거나 고급스럽게 표현하기보다 고증에 따라 깔끔한 영국 신사처럼 그 시대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그려내려고 했다. 그래야 나중에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의 악한 면모가 효과적으로 드러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군복은 다소 화려하게 묘사했지만, 그외에 나머지 의상들은 화이트 앤 블랙, 그레이 정도 톤으로 표현했다.
김성훈
뮤지컬 장면을 현장에서 라이브로 진행하다보니 컷의 호흡이 길었을 것 같고, 의상팀 입장에선 의상을 고치기 위해 컷과 컷 사이에 끼어들 틈이 보통 영화에 비해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심현섭
대부분 감정신이고, 라이브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배우들의 호흡을 깨지 않아야했다. 옷이 조금 삐뚫어졌다고 해서 의상팀이 갑자기 끼어들게 되면 배우들의 감정과 호흡이 깨질 수 있으니까. 현장에서 의상을 입을 때 최대한 신경을 썼고, 팀원들에게도 라이브를 진행할 때는 최대한 배우들의 의상을 건드리면 안 된다고 얘기했다.
김성훈
되돌아보았을 때 <영웅>은 심현섭 의상감독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인가.
심현섭
아마도 윤 감독님과 저를 포함한 전 스탭들이 같은 생각을 할 것 같은데, 촬영하고 난 뒤 코로나 19로 인해서 극장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뮤지컬 영화는 사운드 환경이 정말 중요한데, 저희가 100% 극장 상영 환경에 맞춰서 영화를 만들었지만, 팬데믹을 거치면서 관객의 관람 패턴이 바뀌면서 제작진의 의도를 그대로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나름 사명감을 가지고 만들었지만 더 많은 관객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아쉽지만, 그럼에도 뮤지컬 장르가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로 높은 완성도의 영화를 만든 것 같아 절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김성훈
개인적인 얘기도 여쭙고 싶다. 앞에서 말씀주셨듯이 <예스터데이>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통해 영화 의상 경력을 시작했는데.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나.
심현섭
고등학생 때 영화, 공연을 좋아했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패션디자인학을 전공하면서 연극반에 들어가 무대를 경험했다. 영화를 하기 전까지 여러 공연에 참여해 무대 의상 일을 했다. 그때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촬영에 들어가면서 패션 쪽 선후배들이 내가 무대 의상을 하는 걸 알고 촬영 현장에서 도와달라고 요청하면서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참여하게 됐다.
김성훈
그때 아르바이트로 영화 현장을 처음 경험한 건데, 이후에 본업이 된 걸 보면 재미있었나보다
심현섭
굉장히 재밌기도 하면서도 힘들기도 했었다. 나 같은 경우, 조수 생활을 거친 게 아니라서 영화 의상을 제대로 공부하고 일을 시작한 게 아니었다. 공연을 목표로 하는 무대 의상은 같은 옷이라도 영화와 접근하는 메커니즘이 다르다. 공연은 눈으로 직접 보면서 옷의 색감과 질감 그리고 실루엣을 표현한다면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봐야 하니까. 옷만 잘 디자인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뿐, 콘티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의상감독에 대한 대우도 지금보다 더 열악했었고. 지금이야 언론에서 의상감독이라고 부르지만, 그때는 실장도 아닌 팀장이었다.
김성훈
그렇게 힘든 점이 많았는데도 본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인가.
심현섭
공연도 영화도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는데, 운이 좋았던 건 의상을 창작할 수 있는 작품들을 했다는 거다. 자존심이 강해서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든 점도 있었지만 작품을 하는 순간만큼은 너무너무 행복했다. 그만큼 보람도 많이 느꼈고. <왕의 남자>(2005, 감독 이준익) <궁녀>(2007, 감독 김미정) <불꽃처럼 나비처럼>(2009, 감독 김용균) 같은 영화들이 의상을 직접 창작했던 작품들이었으니까.
김성훈
그러다가 <효자동 이발사>(2004, 감독 임찬상)을 통해 의상감독으로 데뷔했다.
심현섭
그 전에는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일하다가 <효자동 이발사>는 처음으로 의상감독으로 일했던 작품이라 굉장히 떨리기도 했고, 현장 시스템에 적응하는 게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장르와 그 속의 인물들을 표현하는 쾌감이 컸다.
김성훈
아까 언급하셨듯이 <왕의 남자> <궁녀> 최근의 <자산어보> 등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유독 사극이 많다.
심현섭
사극이 1년에 한두편 정도만 제작되던 2000년대 초, 운이 좋게도 <왕의 남자>가 크게 흥행하면서(천만 관객 돌파) 제작자나 프로듀서들이 사극을 해본 의상감독들을 선호하다보니 사극 제안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오게 된 것 같다. 사실 <왕의 남자>를 할 때만 해도 이준익 감독님께서 나와 함께 작업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부담스러워하셨다. 당시만 해도 나 역시 사극 경험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왕의 남자>와 <궁녀>가 연달아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내 의지와 무관하게 사극 전문 의상감독처럼 된 거다. 복식사에서 한복에 대한 자료는 18, 19세기에 기록했던 자료가 거의 전부라 그 이전 시대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렇다고 대충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극에 들어가게 되면 당시 시대상을 고증하기 위해 수십권, 수백권의 책을 읽으며 공부해야 한다. 덕분에 대본이며, 책이며 매년 공부할 수 있어 정신적으로 살을 찌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성훈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개인적으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 속 의상 다섯가지만 꼽아달라.
심현섭
일단, 데뷔작이던 <효자동 이발사>에서 송강호 선배님이 입었던 이발사 옷. 당시만 해도 영화의 메커니즘을 전혀 모를 때라 디자인을 감독님께 컨펌까지 다 받았는데 의상 소재가 가진 특성에 대해 생각을 못했다가 녹음 쪽과 문제가 생긴 거다. 몇 달 동안 고민해서 디테일하게 설계해서 감독님께 가까스로 오케이 받은 건데 의상 소재가 문제가 될 줄은 몰랐었지. 그래서 촬영 사흘 전에 새로 제작했던 기억이 난다. 나름 많은 공부가 됐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된 작품. 두번째 영화는 <왕의 남자>에서 공길(이준기)이 입었던 광대 의상. 그 의상은 <패왕별희>(1993, 감독 첸카이거)의 경극 시퀀스에서 등장인물들이 입었던 경극 의상들을 일일이 종이에 그렸을 만큼 영감을 받았는데, 몇달 동안 공길의 의상을 너무 잘 그려서도, 너무 못 그려서도 안 돼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며 설계했었다. 공길이 광대고, 동성애적인 요소들을 표현해야 해서 많은 고민을 거쳐서 만들어냈다. 세번째 영화는 <관상>(2013, 감독 한재림)에서 이정재가 처음 등장할 때 입었던 사냥복. 그 장면이 한국영화에서 캐릭터가 처음 등장하는 명장면 1, 2위를 다툴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고 그러더라. 칭찬을 많이 받다보니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다. 네 번째 영화는 <자산어보>(2021, 감독 이준익). 흑백영화라 채도 없이 명도로만 의상을 표현하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다. 흑백영화는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처음이었는데 어마어마하게 어려웠다. 단순한 명도 차이 뿐만 아니라 질감까지 일일이 따져야 해서 흑백이라도 캐릭터마다 각기 다른 색의 의상들을 설정해야 했다.
김성훈
흑백 질감은 촬영 전 테스트를 하면서 명도, 질감의 차이를 익힌 건가.
심현섭
그렇다. 재미있는 경우가 되게 많았는데 궁 시퀀스에서 대신들이 보통 빨간색, 파란색으로 된 관복을 입지 않나. 그런데 바닥이 너무 어두워서 빨간색과 파란색 관복을 입으면 의상과 바닥 배경이 색이 붙더라. 그래서 빨간색과 파란색을 버리고 밝은 색의 상복을 대신복 삼아 입혔다. 그래야 바닥과 명도 차이가 나니까.
김성훈
다음에 흑백영화를 찍게 되면 더 수월하게 작업하실 수 있을 것 같다.
심현섭
노하우는 많이 생겼다. <자산어보>가 끝난 뒤 이준익 감독님께서 사람들이 컬러 버전을 되게 궁금해하는데 컬러 버전으로 따로 내놓는 건 어떨까 해서 욕 할 뻔 했었다. (웃음) 마지막은 최근작인 <영웅>을 꼽겠다.
김성훈
한국영상자료원 수집캠페인에 참여하게 된 소감을 말씀부탁드린다.
심현섭
의상 뿐만 아니라 소품이나 세트도 정말 많은 공을 들이고, 잘 만들려고 노력했던 건데 촬영이 끝나고 나면 사장되는 운명이다. 처음에도 나 또한 의상들을 잘 보관하려고 하지만, 메인 의상은 다른 작품에 활용할 수도 없다. 작업실에 보관하면 시간이 지나서 짐이 많아지고, 그러다가 분실되거나 폐기되는 경우도 많아서 개인적으로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던 차다. 아카이빙 기관인 한국영상자료원이 수집캠페인을 통해 잘 보관해서 후배들이나 후대들에게 전시도 하고, 기록으로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의상감독 은퇴를 하면 의상 박물관을 운영하는 게 오랜 꿈이다. 그래서 지금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 영상자료원에 항상 기증을 하는 이유도, 나보다 더 관리가 잘 되고, 후배들에게 온전히 의상을 보여줄 수 있다면 정말 영광이기 때문이다. 기쁜 마음으로 수집캠페인에 참여하게 됐다.
글 김성훈(<씨네21> 기자) / 사진 김성백(스튜디오 '오늘의 나' 작가) / 편집 정연주(한국영상자료원 수집카탈로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