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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러라 행운아! <우르러라 창공> 포스터 수집기 2024.05.29 885
우르러라 행운아! <우르러라 창공>포스터 수집기
서울시중부교육지원청에 잠자고 있던 미보유 한국영화 포스터 발굴

글: 한국영상자료원 김승경 연구원(국내수집 담당)

한국영상자료원 수집업무에서 성공률이 높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 영역이 한국고전영화 자료 수집이다. "영화필름 등의 의무제출(납본)"제도가 시행된 것이 1996년이고, 한국영상자료원의 전신인 한국필름보관소가 생긴 것이 1974년이니, 그 이전에 제작된 영화 중에 아직 발굴하지 못한 영화들이 꽤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에 제작된 영화들은 보존율이 매우 낮은 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이나 민간에서 보존할 수 있는 필름 연한은 짧아지게 마련이니 영화 본편 필름 뿐 아니라 당시 영화와 관련된 어떤 자료라도 보존할 가치가 있다면 수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전영화 자료를 위한 수집의 방법들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가까운 곳에는 원로영화인들이 계시다. 오랜 설득 끝에 개인의 기록이라며 수줍게 내어주시지만 예상치 못한 다량의 미보유 자료가 발굴되기도 한다. 2023년 <서편제>(임권택, 1993) 등의 소품을 담당하셨던 김호길 선생님께서 ‘이런 게 자료가 되려나?’라는 말씀과 함께 취미로 모아오셨던 1950~1980년대 개봉 국내외 전단 400여 점을 기증해 주셨다. 상당수가 미보유 전단이었다. 또 평생을 모아온 자료를 기증해 주시는 일반관객들도 계시다. 이렇게 기증된 자료들은 온라인기증자료관(www.koreafilm.or.kr/service/donations)을 통해 공개된다.

그렇다면 다음의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 원은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보상수집도 진행 중이다. ‘나는 고자료에 관심이 많은 자산가이다’라고 몇 번을 세뇌하듯 되뇌이며 한국·일본·미국 등의 고자료 경매사이트에 주기적으로 방문한다. 대부분 경매품 가격에 붙은 ‘0’을 세어보다가 화다닥 모니터 화면을 닫기 일쑤지만 미처(?) 다른 사람들이 자료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합리적인 가격에 자료원의 귀중한 보유자료가 되기도 한다. 

다소 무모하고, 어쩌면 무식해 보일 수도 있는 마지막 방법은 소문 하나에 기대 풍문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근현대자료 수집가들의 모임과 학회에 참석하여 그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기도 하고, 수다도 떨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조각을 맞춰보기도 한다. 건너건너 아는 분의 할아버지가 영화관계자였다는 소문을 들으면 건너건너 연락을 취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연락된 어떤 분이 이불장 깊숙이 들어있던 할아버지의 사진첩을 기증해 주셨고, "이재명 켈렉션"(www.kmdb.or.kr/collectionlist/detail/view?colId=441&isLooked=false)으로 공개할 수 있었다.


* 2021년 수집 당시 영화제작자 이재명 사진첩. 세부내용은 한국영상자료원 온라인 컬랙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발굴한 <우르러라 창공>(김영화, 1943) 관련 스틸과 제작정보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발굴되었다. 모 연구자와의 수다(?) 중에 서울특별시 중부교육지원청에서 서울 중부지역에 오래된 학교들에 보관 혹은 방치된 자료를 발굴하여 중부교육디지털박물관(jbarchives.sen.go.kr)을 오픈하였는데, 포스터나 필름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장 사이트에 접속하여 <우르러라 창공> 포스터와 스틸사진 2장을 확인했고, 담당 연구사에게 연락했다. 관련 자료를 공유해 주신다면 스틸에 등장한 인물들의 정보를 알아보겠노라고 제의했고, 마침 교육지원청 담당자도 내용 정보를 찾기 힘들어 답답했는데 논의해 보겠다고 하였다. 몇일 후 답이 왔다. 이 건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상호협력을 진행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일이 커졌다. MOU를 맺게 되었다. 교육감과 교육청 직원들이 자료원을 방문하여 박물관과 보존고를 견학하였고, 중부교육청 관할의 100년 이상된 학교들에 있는 영상자료들을 함께 발굴하기로 하였다. 


* 지난 3월 5일, 서울특별시중부교육지원청 관계자들이 영상자료원 상암 본원 필름보존고를 견학하고, 영상자료원과 "영상기록유산 보존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우측사진 : 한국영상자료원 김홍준 원장(좌), 서울특별시중부교육지원청 안윤호 교육감(우))  

MOU 후 고화질 스캔을 위해 <우르러라 창공> 포스터 및 관련 자료를 받아왔다. <우르러라 창공>은 재동소학교 학생들이 출연한 영화로 이 영화에 참여했던 관계자가 재동초등학교에 관련 자료를 기증하였고, 중부교육청으로 이관된 자료였다. 이 자료를 통해 ‘학생들에게 항공정신을 양양시키기 위한 군국주의 어용영화’로만 알려져 있던 이 영화의 구체적인 줄거리를 알 수 있게 되었고, 출연진과 스태프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 <우르러라 창공> 제작진. 뒷줄 왼쪽 첫번째 양세웅 촬영감독, 왼쪽 두번째 김영화 감독, 오른쪽 첫번째 시나리오작가 오영진, 오른쪽 두 번째 제작자 장선영, 앞줄 오른쪽 두 번째 여학생 최정현, 오른쪽 세 번째 남학생 백천승(영길 역), 오른쪽 네 번째 남학생 신영철(정길 역)

사실 기대했던 <우르러라 창공>보다 더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포스터 뒷면에 있는 <무정>(박기채, 1939)의 포스터였다. 일부 찢겨져 있지만 두 포스터 모두 오른쪽 상단에 ‘조영’의 마크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고, 이는 두 영화의 제작 주체가 일제가 세운 사단법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가 아닌 조선인 자본의 조선영화주식회사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간 잘못 알려진 <우르러라 창공>에 대한 영화사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 실물자료를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무정>의 포스터도 발굴하면서 한국영화사의 비워진 부분을 조금은 메울 수 있었다.


* <우르러라 창공> 포스터(좌) 및 포스터 뒷면에 <무정> 포스터

고전영화자료 수집의 가장 큰 특징은 예측불가능성이다. 당연히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찾아오는 행운 같은 발굴이 주는 뿌듯함이 동력이 되어 다시 찾아 나설 용기를 준다. 이 글을 읽으신 많은 분들이 영화자료의 제보자가 되어주시기를 바라고, 온오프 공간을 통해 공개되는 자료들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