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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저편으로 여행하기 | 2024.09.24 | 562 |
영화라는 저편으로 여행하기
달시 파켓이 보내온 한국영상자료원 X 싱가포르 아시안 영화 아카이브의 교환상영 가이드 글: 달시 파켓 영화는 탄생 초기부터 관객을 새로운 장소로 데려다 주는 힘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는 자신들이 새롭게 발명한 시네마토그래프로 공장이나 기차역과 같은 일상적인 장면을 시험 촬영했다. 그리고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전 세계에 촬영 기사들을 파견해서 자신들이 찍은 영상을 세계의 관객에게 소개하는 한편, 세계 여러 나라의 새로운 영상들을 찍어오게 해서 프랑스의 관객에게 소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이듬해, 이미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촬영되고 상영되고 있었다. 관객들은 열광했다. 그때까지 발명된 그 어떤 매체도 영화만큼 새로운 지역을 여행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느낌을 효과적으로 재현하지 못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영화 예술은 더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촬영, 편집, 사운드의 창의적인 잠재력을 탐구하며 발전해 나갔지만, 관객을 다른 시간과 장소로 이동시키는 장치라는 영화의 본질적인 특성은 영화 관람 경험의 중심에 남아 있었다. 싱가포르의 아시안 영화 아카이브는 2024년 세 번째 ‘교환상영’ (Reciprocal) 프로그램의 주제를 '영화적 여정' 으로 정했고, 이로써 다양한 관점과 해석의 가능성을 열었다.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진행한 이 프로그램은 열두 편의 영화가 상영되었고, 두 아카이브는 각각 문자적 또는 비유적인 여정을 다룬 작품을 6편씩 선정했다. 아시아의 서로 다른 지역에 위치한 두 영화 아카이브가 공통된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는 이 혁신적인 프로그램 방식은 관객들에게 다양한 영화를 보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몇몇 영화들은 말 그대로의 물리적인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예를 들어 대만에서 이주 노동자로 살아가는 두 명의 필리핀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 호위딩 감독의 <피노이 선데이>(대만/필리핀, 2009), 잃어버린 누이를 찾아 한국을 횡단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한국, 1993)가 있다. 에릭 쿠 감독의 <우리가족: 라멘샵>(싱가포르/일본, 2018)에서는 주인공이 일본에서 출발해 싱가포르로 향하는 물리적인 여행을 떠나는 동시에, 옛 가족들을 찾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과거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겪는다. 이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가족사를 탐구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세번째 ‘교환상영’ 프로그램…물리적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 <최후의 증인> (한국, 1980) 스틸이미지 이번 프로그램에는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한국, 1980)은 살인 사건의 동기를 추적하는 한 형사와 함께 30년 전 한국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수용 감독의 모더니즘 영화 <안개>(한국, 1967)는 주인공의 고향 방문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찾아간 고향에서 주인공의 마음은 자꾸 과거로 끌려가는 한편, 불행한 사랑에 빠지면서 과거와 현재가 충돌한다. 다른 영화들은 좀 더 추상적인 여정을 보여준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한국, 2001)나 림 수앗 옌 감독의 <가지 않은 길>(싱가포르, 1997)처럼 예술에 꿈을 꾸거나, 미리 정해진 인생의 길을 따라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들도 있다. 두 영화 모두 음악가 지망생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흥미롭게 주제가 겹친다. 심지어 이스마일 바스베스 감독의 <회전목마는 멈추지 않는다>(인도네시아, 2017)처럼 얼핏 보기에는 목적지가 없는 것 같은 여정을 보여주는 영화도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따라가는 '주인공'은 군용 지프다.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여정을 마주한 관객들은 '영화적 여정'이라는 개념과 그 두 단어가 함축하는 모든 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안개 (한국, 1967) 스틸이미지 로드 무비 영화 장르 속 여정의 특징 가운데 하나를 들자면 물리적인 여행과 자아 발견의 과정, 두 주인공 간의 유대감 심화, 또는 사회의 다양한 사회의 단면에 노출되는 경험과 결합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을 생각할 때, 이번 프로그램에 포함된 일부 작품은 로드 무비 장르와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마도 이 특징에 가장 가까운 작품은 <피노이 선데이>일 것이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버려진 빨간 소파를 들고 자신들의 숙소 옥상까지 옮기는 동안, 타이베이 곳곳을 가로지른다. 그 엉뚱하고도 긴 하루 동안의 이동 과정이 이 영화의 상당 부분을 채운다. 그들은 무거운 소파를 도시의 거리와 고속도로를 지나며 옮기는 동안, 여러 위기와 장애물에 부딪히는데, 이는 대부분 외국에서 이주 노동자로서 그들이 처한 불안정한 상황을 드러낸다. 그러한 이동과 마주침의 과정을 통해 두 주인공의 의지와 우정의 한계를 시험한다. <피노이 선데이> (타이완/필리핀, 2009) 스틸이미지 이장호 감독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한국, 1987)에서는 매우 독특한 형태의 로드 무비를 만날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가려는 곳은 건널 수 없는 국경 너머에 있다. 한 남자가 죽은 아내의 유골을 가지고 다닌다. 그 아내의 고향은 지금은 북한 땅이 된 한 마을이다. 그는 비무장지대를 넘지 않은 채, 아내의 고향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유골을 뿌리려 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아내를 떠올리게 하는 세 명의 여성(모두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을 만나고, 이 세 명의 여성은 모두 갑작스러운 불행을 겪는다. 이 영화는 운명과 상호 연결성이라는 무속적 개념을 고찰하며, 분단된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다. 도달할 수 없는 목적지로 향하는 여정은 논리적 인과관계를 벗어나는 다소 실험적인 영화에 잘 어울리는 설정이며, 주인공을 불확실한 결론으로 이끌어간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한국, 1987) [한국과 싱가포르 양국의 로드무비들…주인공 간의 연대, 자아 발견, 국경이 중요한 요소로] 영화적 여정에서 국경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국경을 넘는 것은 한 사람을 내부인에서 외부인으로 바꾸어 놓고, 낯설고 생소한 환경이나 문화에 던져놓기도 한다. <우리가족: 라멘샵>(싱가포르/일본, 2018)에서 젊은 라멘 셰프 마사토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싱가포르에 도착했을 때 관객이 느끼는 감정 또한 그럴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싱가포르인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10살까지 싱가포르에서 살았기 때문에 원래는 이곳의 내부자였다. 그는 어머니의 빨간색 레시피 노트를 들고 싱가포르에 남아 있는 친척들을 찾아 나서며, 가족의 과거와 자신의 잃어버린 절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우리가족: 라멘샵>(싱가포르/일본, 2018) 스틸이미지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한국, 2001)에서는 중국 여성 파이란(장백지)이 영화 시작 장면에서 국경을 넘어, 회의적인 이민 심사를 통과해 인천항에 도착한다. 그녀도 친척을 찾고 있지만, 마사토처럼 사정이 좋지는 못하다. 중국에 돌아갈 가족도 없이 홀로 남겨진 파이란은 비자를 얻기 위해 사기 결혼에 동의하고 점차 이국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대부분은 그녀의 남편 강재(최민식)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막 출소한, 불운한 건달인 강재는 조직 내에서 자신의 지위와 인생 모두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예상치 못하게, 평생 만날 일 없는 이 두 대조적인 인물의 운명이 얽히게 되고, 강재는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구원의 여정으로 내몰린다. 특히 눈물을 자아내는 스토리로 한국에서 유명한 이 영화, <파이란>은 갈 곳 없는 두 인물이 점차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들의 이야기는 서로 평행을 이루다 거의 교차할 뻔하지만, 결국 그 둘 사이의 반발력이 더 강력하게 작용하며 영화는 강렬한 비극적 감정을 선사한다. <파이란>(한국, 2001) 스틸이미지 60년 전에 만들어진 싱가포르 영화 <술탄 마흐무드의 죽음> (K.M. 바스커 감독, 1961)에서는 다른 비극이 펼쳐진다. 17세기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낯선 땅에서 전투를 승리로 이끈 뛰어난 제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독은 전투 과정에서 한 외국 여성을 구출하고, 그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결혼하기로 한다. 왕이 제독의 공적을 인정하고 보상하면서, 이 젊은 연인 앞에 인생의 새로운 막이 열리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의 여정은 질투심 많은 라이벌, 지역 정치, 그리고 왕의 변덕으로 인해 방해받는다. 마침, 제독은 다시 해외에서 벌어진 전투에 출전하고 아내는 홀로 남겨진다. 외부인 신분인 제독의 아내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취약한 상황에 내몰려, 결국 말할 수 없이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술탄 마흐무드의 죽음> (싱가포르, 1961) 스틸이미지 이번 프로그램 가운데 언뜻 보기에 '여정'이라는 개념과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영화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행이란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 외에도 여행자에게 귀중한 관점의 변화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즉, 여행은 여정 가운데 거쳐 가는 장소를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지점은 자기가 출발했던 장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여행은 여정 가운데 거쳐 가는 장소를 더 자세히 보게 하고, 출발했던 장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 <만월의 죽음>(스리랑카, 1997) 스틸이미지 프라산나 비타나게 감독의 <만월의 죽음>(스리랑카, 1997)은 관점의 전환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끔찍한 비극의 소식으로 시작된다. 마을 원로 중 한 명의 아들이 내전에서 사망한 것이다. 사망한 아들이 관에 실려 마을로 돌아오고 장례식이 치러지며, 그의 가족은 슬픔에 잠긴다. 처음에는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정은 애도와 회복의 과정과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 정부가 아들의 죽음에 대한 보상금을 제시하지만, 아버지는 관련 서류에 서명하기를 거부한다. 이렇게 아버지와 가족 구성원들의 현실이 충돌하기 시작한다. <회전목마는 멈추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2017) 스틸이미지 여정을 생각할 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몇 가지가 있다. 목적지, 혹은 적어도 주인공이 특정 방향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이 그 예다. 그러나 이스마일 바스베스 감독의 독창적인 작품 <회전목마는 멈추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2017)에서는 군용 지프가 주인공의 역할을 하는데, 이로써 여정이라는 개념 자체가 해체된다. 영화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지프를 운전하거나 타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현대 인도네시아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볼 수 있다. 지프 자체가 캐릭터로서 발전하거나 자기 실현의 면모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독특하지만 여전히 일종의 로드 무비처럼 느껴진다. ‘영화적 여정’이라는 주제의 ‘교환상영’ 프로그램에 이 영화를 포함시킨 것은 상영 프로그램의 구성에 따라 영화 경험 방식 또한 미묘하게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이 작품은 '영화적 여정'이라는 프로그램 속에서 (물리적, 심리적인 의미의)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여정이라는 개념 자체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을 관객에게 상기시켜 준다. 이 글은 지금까지 이번 프로그램의 상영작품 속에 묘사된 여정에 초점을 맞춰 설명해왔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영화 자체가 제작 시점부터 오늘날까지 겪어온 여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자체의 여정 가운데 극적인 전환을 겪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한국, 1980)은 박정희 대통령 암살 이후에 잠시 이어졌던 짧은 정치적 해빙기에 촬영되었지만, 영화가 개봉하기로 했던 무렵에는 새로운 군사 정권이 권력을 잡았다. 검열 당국은 이 영화에 나타난 비관적인 정의관과 시대를 건너 지속되는 역사적 범죄라는 설정에 의혹을 품은 채 제작사에 편집을 압박했고, 결국 원래 분량에서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삭제된 채 개봉되었다. <최후의 증인> (한국, 1980) 복원 전&후 이미지 1980년에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작품에 대해 완전히 다른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삭제된 장면이 복원되어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에서 상영되었고, 류승완 감독을 비롯한 당대 감독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최근에는 영자원에서 디지털 리마스터링 및 복원 작업을 거쳐 현대 관객들에게 더욱 생생한 관람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1980년에 제작된 이 영화가 완성된 상태로 가장 많은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21세기까지 기다려야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이는 ‘교환상영’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과거의 작품을 보존하고 미래 세대에게 다시 소개하는 영화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글에서 언급된 한국고전영화가 궁금하다면? 한국고전영화 Korean Classic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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