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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이번엔 런던으로! | 2024.10.28 | 233 |
한국영화, 이번엔 런던으로!
시간의 메아리: KOFA와 BFI의 한국 영화 특별전 현장 기록 글·사진: 최영진(한국영상자료원) 다음은 한국영상자료원(KOFA)와 영국영화협회(BFI)이 공동 기획한 한국영화 특별전 <시간의 메아리: 황금기와 뉴시네마의 한국영화> 관련 이벤트를 진행하기 위해 간 출장 중 찍은 사진 모음이다. 프로그래머 고란 토팔로빅과 함께 준비한 이 특별전은 10월 28일부터 12월 31일까지 BFI 사우스뱅크에서 진행된다. 기획전을 준비하는 동안 미국에 거주하는 고란과 수차례 구글 미팅 통화를 진행했다. 2019년 일제강점기 초기 한국영화 특별전 이후 BFI에서 주최하는 첫 한국영화 특별전. BFI에서 제안을 받았을 때, 사실 육아 휴직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업무를 동료들에게 넘기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고 어차피 기회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아기를 돌보다 재운 후 야간 근무를 하면서 준비할 수 있었다. BFI 측에서는 한국영화사의 다양한 시기를 포괄하고 한국영화에 대한 입문이 될 수 있는 기획전을 요청했다. 그래서 고란과 함께 뉴욕 필름 앳 링컨 센터를 위해 1960년대 황금기와 1990~2000년대 뉴 코리안 시네마 프로그램을 기획한 경험을 바탕으로 두 르네상스 시대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관객들이 새롭고 매력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BFI는 우리 둘을 기획전 관련 행사에 참여하도록 초청했다. 기획전을 소개하는 대담에 참여하고 각자 세 편의 영화를 소개하기로 했다. 또한, 나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해외 수출사 연구에 대한 발표를 진행하고, 고란은 감독 GV를 모더레이터로 진행할 계획이었다. BFI가 우리의 항공편과 숙박비를 대부분 지원해줘서 다행이었지만, 함께 출장 온 동료 프로그래머 P는 예산으로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사비로 충당해야만 했다. 프로그래머들이 해외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마련된 예산이 너무 적다는 사실이 늘 씁쓸하다. 해외에 있는 동안 호텔 방에 앉아 있는 것이 늘 아깝게 느껴지지만, 행사 준비를 미리 할 여유가 항상 없는 듯 하다. 다행히 발표는 뉴욕에서 이미 해봤기 때문에 본문 수정과 발표 연습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한편, 몇 년 전 템스강 너머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연구했던 내용을 BFI에서 발표하게 되어 기분이 묘했다. 드디어 런던 도착! 런던에 왔다면 빅벤을 바라보는 것은 필수. 운 좋게도 BFI는 빅벤에서 템스강 건너편에 자리 잡은 호텔을 예약해주어 매일 아침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었다. BFI 사우스뱅크 건물에 걸린 <시간의 메아리> 기획전 빌보드 포스터. 포스터 디자인은 BFI의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담당했다. 두 가지 버전 중 선택할 수 있었는데, 다른 버전은 <올드보이>의 최민식 배우가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 배경에 있었다. 홍보를 지원하는 주영한국문화원 측에서는 마케팅 측면에서 <올드보이> 버전을 선호했지만, 고란과 나, 그리고 의견을 구한 프로그래밍팀 전체는 <박하사탕> 버전에 더 끌렸다. 설경구 배우의 표정이 <안개>의 미묘한 낭만적 분위기와 잘 대조되었고, 그의 묵언의 비명은 시즌 제목의 ‘메아리’를 상기시켰다. 참고로 기획전 제목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양한 제안이 있었는데, 그 중 <코리안 필름 익스플로전!>이 특히 흥미로웠다. 결국, 고란이 두 시대의 간접적인 관계를 상징하는 단어로 ‘메아리’를 떠올렸다. * (좌측부터) 최영진 프로그래머, 고란 토팔로빅 프로그래머, 장준환 감독 런던은 고란, 나, 그리고 동료 P만 온 것이 아니다.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님도 영화소개와 GV에 참여하는 제안에 감사히 수락하여 런던에서 뵙게 되었다. 부인 문소리 배우님도 동행하셨다. 런던을 함께 걷는 두 분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장 감독님이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동료 P와 나는 BFI 카페에서 문 배우님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눈 것이 이번 여행 중 소중한 추억 중 하나였다.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1957년에 개관한 BFI 시네마테크는 당시에는 내셔널 필름 시어터(NFT)로 알려져 있었다. 2007년에 BFI 사우스뱅크로 재개관했으며, 네 개의 스크린, 미디어테크, 도서관, 갤러리 공간을 갖추고 있다. 각 극장은 초기 이름을 기리기 위해 NFT1부터 NFT4로 명명되었다. 이 공간을 우리가 며칠간 계속 방문하면서 주로 선임 프로그래머 저스틴 존슨(Justin Johnson), 이벤트 매니저 아가 바라노프스카(Aga Baranowska), 그리고 홍보 담당자 리즈 파킨슨(Liz Parkinson)을 접했는데, 세 분이 너무 친절하고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궁금해서 문의하니 시네마테크 운영하는 데 프로그래머 7명(!)이 BFI 사우스뱅크 기획전들을 관리하고, 그 외 큐레이터(연구자) 약 20명(!)이 각자 전문 분야에 따라 소규모 정기 기획전을 마련하고, 고란과 나와 같은 게스트 프로그래머도 여러 명 초청한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저작권 및 상영본 관리자와 이벤트 매니저가 별도로 있다. KOFA에서는 프로그래머 세 명이 영사실과 티켓박스 업무 제외하고 극장 상영 관련 모든 것을 핸들링한다고 이야기하자 놀란 반응이 기억난다. BFI 샵은 블루레이, DVD, 서적들을 판매하는 작은 매장이지만 아주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할로윈을 기념하여 그에 맞춘 테마로 장식되었다. 한국 관련 자료들도 특별히 진열되어 있는 것도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기쁨에 넘쳐 한 시간가량 구경하며 수다를 떨었다. 되돌아보면 우리가 꽤 시끄러웠던 것 같은데, BFI 직원들은 오히려 우리의 열정을 환영하며 전혀 개의치 않았다. 기념품으로 <여판사> 실물 티켓을 요청할 수 있다. 모든 상영에 대해 이런 티켓을 수집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바빠서 못했다. 오랜 시간 프로그램 노트를 작성하고 수정한 끝에, 마침내 프로그램북을 손에 들었을 때의 기분은 너무 좋았다. 특히 KOFA에 대한 감사 문구가 실린 것을 보니 뿌듯했다. 거기에는 올해가 KOFA의 50주년이라는 점, 그리고 KOFA가 주도한 12편의 디지털 복원작과 5편의 디지털화작, 그리고 필름 컬렉션의 35mm 프린트가 함께 프로그램에 포함되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언론 인터뷰가 진행되는 그린룸. 감독들이 서명한 영화 포스터가 함께 장식되어 있었고, 다양한 음료도 있었다(맥주 포함!). 동료 P와 나는 KOFA가 모은 서명된 포스터를 이렇게 활용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판의 미로> 포스터에 그려진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자화상을 찍기 위해 차례로 사진을 찍었다. 너무나 귀여웠다! 고란과 나의 인터뷰는 다른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셜록 홈즈 이야기에 나올 법한 영국풍의 서재였으며, 심지어 미니 바도 있었다. 인터뷰는 항상 긴장되지만, 함께해준 파트너 덕분에 조금은 안심되었다. 인터뷰 중 멜로영화에 대해 꼭 언급하고 싶어 <접속>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는데, 인터뷰를 진행한 분과 BFI 직원 분이 영화를 꼭 관람하겠다고 하여 뿌듯했다. 고란과 나는 런던에 있는 동안 가능한 한 많은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다. 나는 <여판사>, <안개>,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소개했고, 고란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황혼의 검객>, <춘몽>을 소개했다. BFI와 링컨센터의 관객 차이를 확인하는 계기도 되었다. 고란이 <황혼의 검객>을 소개할 때, 정창화 감독님에 대한 관심으로 이 자리에 온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봤다. 손을 든 사람은 몇 명뿐이었다. 지난해 뉴욕에서 1960년대 한국 영화 회고전의 일환으로 이 영화를 상영했을 때는 상당수의 관객이 정 감독님 팬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는 링컨 센터와 BFI의 관객이 확연히 다르다는 증거였다. 이후 우리는 그들이 왜 이 영화로 끌렸는지 토론했다. 한국적 무협영화가 무엇인지 궁금해했을까? 아니면 단순히 멋진 제목 때문이었을까? BFI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순간은 개인적으로 특별했다. 런던에서 공부하는 동안 BFI에 영화를 보러 자주 방문했는데, 그때 프로그래머의 소개를 보며 KOFA에서도 하고 싶다는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안개>를 소개할 때는 기획전 포스터 전면에 나오는 신성일과 윤정희 배우님을 가리키며 설명할 수 있었다. 지난해 김수용 감독님과 윤정희 배우님의 안타까운 별세를 이야기하던 중, 순간 울컥했다. 그제야 이번 상영이 그분들에 대한 헌사가 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많은 분들이 그 자리에 함께해 주셔서 정말 기뻤다. <지구를 지켜라> 상영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기뻤다. 곧 개봉할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리메이크로 인해 관심이 커진 듯하다. 런던에서 4K 복원판을 극장에 처음 선보일 수 있어서 뿌듯했다. 장준환 감독님의 인트로가 너무나 인상적이다. 영화 이야기는 하나도 안 하셨다. <지구를 지켜라> 상영 중 반응은 끝내줬다. 이렇게 열정적인 관객과 함께 극장에서 이 영화를 경험할 수 있어 정말 기뻤다. 이어진 GV도 매우 흥미진진했는데, 장 감독님은 영화 <미저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외계인 음모론, 그리고 어린 시절 큰 귀를 가진 의사 선생님이 영화 제작에 영향을 주셨다고 했다. 사진 속에서 팬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오발탄> 상영 후 대담에 참여했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이 때쯤에는 꽤 지쳐 있었다. 관객들로부터 흥미로운 질문도 많이 받았고, 런던영화제의 조현진 프로그래머님이 모더레이터로 참여해 주셔서 든든했다. 이후 늦은 밤까지 모두 그린룸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하루라도 더 오래 있고 싶다는 마음이 있지만 말이다. 한국으로 출발하는 날. 동료 P와 나는 점심 때 장준환 감독님과 문소리 배우님을 만나 점심을 함께 했다. 만나는 장소는 교회를 개조하여 만든 푸드 코트인 Mercato Mayfair. 런던에서 공부하는 동안 구경하기 위해서라도 아내와 자주 왔었다. 런던에서 마지막 식사를 이 추억의 공간에서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감독님과 배우님께 이번 기획전을 더욱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동료와 함께 비행기에 탑승했다. EPILOGUE 인천에 착륙하기 한 시간 전. 갑자기 깊은 우울감이 몰려왔다. 모든 프로그램 작업이 끝나면 항상 이런 기분이 든다. 마치 나의 일부를 다 쏟아 부은 프로젝트가 이제 내 손을 떠난 느낌. 당연히 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 영화, 영화를 만든 이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큐레이팅 과정에서 많은 열정을 쏟으면 착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내 모니터로 문병곤 감독님의 <밤낚시>를 틀었다. 비행기에서 본 첫 단편 영화였기에, 그 새로움이 잡생각을 덜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던 중, 한 줄의 영어자막이 눈에 띄었다. “But to feel this emptiness is a proof that you’ve done your best.” "하지만 이런 공허함을 느낀다는 것은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다." 이 문장은 주인공의 차에서 나오는 라디오 방송의 대사로, 영화의 맥락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배경 소음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순간, 번역의 문법적인 오류는 차치하고 그 문장이 깊이 와닿았다. 영화와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예측할 수 없는지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법한 한 줄의 대사가 때로는 스스로의 암흑적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구명조끼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동료 P와 함께 비행기에서 내릴 즈음에는 그러한 감정도 사라졌다. KOFA와 BFI의 긴밀한 협업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 축복이라는 생각만 남았다. BFI 관객들은 우리가 사랑해서 선정한 영화들의 매력을 알아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BFI의 프로그래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시각을 얻은 것 같다. 모든 것이 괜찮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