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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부동산 공화국의 자화상 2024.10.28 362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부동산 공화국의 자화상
문화영화로 읽는 시대의 금융 서사

글: 한나리(한국영상자료원 객원연구원)

KMDb의 컬렉션 페이지에서는 특정 주제에 집중한 문화영화 컬렉션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컬렉션 연구는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유한 문화영화와 기록영상을 중심으로 외부 사이트 등을 통해 VOD로 접근 가능한 영상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중 올해 10월 공개되는 컬렉션으로 ‘문화영화로 보는 한국의 재테크와 금융’이 있다. 

‘문화영화로 보는 한국의 재테크와 금융’은 기(旣) 정리된 자료원 보유의 국가기관 제작 기록영상 및 문화영화 목록(2020년 진행)을 토대로 선정한 주제이다. 우선 195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제작되었던 문화영화와 국가 주도의 기록영상 리스트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금융 관련 영상들이 눈에 띄었다. 더불어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노골적인 표현으로 수식되는 한국에서 부동산을 비롯한 재테크에 대한 관심은 한시도 사그라든 적이 없기에 ‘돈 모으기’의 지난 모습을 돌아보는 작업이 현재를 이해하는 데도 유의미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본 컬렉션이 시작되었다.

1971년 7월 월간산 은행 광고 및 현재의 아파트 모습

* 1971년 7월 월간산 은행 광고 및 현재의 아파트 모습
 

과거 돈 모으기의 풍경을 통해 현재를 들여다보는...


컬렉션에는 자료원의 열람 가능한 필름 및 영상 보유 작품, 심의서류 혹은 시나리오 보유 작품, 자료원 밖의 국가기록원, 한국정책방송원, 한국근현대영상 아카이브의 영상이 망라되었다. 저축, 주식, 보험 등의 금융상품 관련 키워드, 월급, 현금, 자산 등의 돈 모으기와 관련된 키워드, 집값, 월세, 주택, 내 집, 청약, 투기 등의 부동산 관련 키워드 등을 색출하여 1차 리스트를 작성한 후 실물 필름⋅VOD⋅시나리오⋅심의서류 열람을 통해 작품을 선별해나갔다. 그 결과 이번 컬렉션에는 총 73편의 영상이 포함되었다. 영상의 세부 주제로는 보험, 저축, 주식 장려, 가계부 쓰기, 종잣돈 모으기 장려, 금융기관 소개, 저축상품 소개, 청약 및 주택 마련 과정 소개 등이 발견되었다. 시기적으로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작품 비중이 높은 편이었고 이후 감소하였지만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고르게 제작되었다. 
컬렉션의 큰 목적은 국가의 정책과 사회의 변화를 영상을 통해 돌아보고 국가가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국민에게 다가서는 양상을 재고해보는 것이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흐름이 파악되었다. 첫 번째로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에는 국민과 국가가 일심동체가 되어 더 나은 살림살이를 만들어 가는 것이 강조되었고, 이를 위해 은행에 가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장려되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따라서 당시 금융기관 이용은 단순히 돈을 잘 모으기 위해서뿐 아니라 더 현대적이고 더 윤리적인 행위라는 가치가 있음이 영상에서 강조되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항아리에 돈을 묻는다든지(<남몰래 묻은 항아리 셋>(국립영화제작소, 1972)) 계를 굴리다가 곗돈이 사라지는 일(<언덕위의 하얀집>(국립영화제작소, 1978))과 같은 연출을 통해, 기관을 이용하지 않는 금융 행위는 적극적으로 지양되었다.

 

한국 사회의 금융 가치 변화와 내 집 마련의 꿈

 
두 번째로 내 집 마련과 관련한 영상에서 시대의 분명한 변화를 볼 수 있었다. 내 집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던 시기, 고층 아파트와 대단지 주택 정책은 효율적인 방법일 뿐 아니라 일면 도의적인 수단으로도 비춰졌다. 그러나 오늘날 대단지 아파트는 부동산 투기의 한복판에 있다. 대단지 아파트 개발이 사회적인 목적으로 홍보되었던 영상과 현재를 비교하면 시대의 변화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또한 198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 관련 영상에 등장한 '투기'라는 개념에서도 내 집 마련에 집중되었던 힘이 투기로 발아한 한국사회의 변화를 볼 수 있다.
본 컬렉션을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저축과 같은 ‘돈 모으기’ 의미의 변화이다. 돈을 모으는 행위에서 국가와 사회를 위한 의미가 강조되었던 것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낯선 옛날 얘기이다. 금융이 미덕으로 강조되던 당시를 보고 있자면 국민의 쌈짓돈이 절실했던 시대상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 불편하기도 하다. “내자의 조달은 국민 스스로가 해결할 일”(<범국민 저축운동>(국립영화제작소, 1965)이라고 할 수 있었던 제2회 저축의 날 기념 대통령 연설이 그러하고 ‘저축유공자’는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저축이 ‘공(功)’이었고, 그 공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니,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다. 
이렇게 급변한 시대 상황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그저 옛날 얘기로만 남겨두면 회고의 의미가 사라진다. 시대의 변화가 빠른 사회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일의 의미는 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를 기준으로 삼자면 50년이 흐른 현재, 금융의 가치와 방식도, 사람들의 인식도 모두 달라졌다. 저축은 가장 효용성이 떨어지는 재테크 수단이 되었고 “푼돈”에 더 이상 의미를 부여하기도 힘들어졌다. 재테크는 여전히 어떤 면에서 현대인의 중요한 미덕이지만, 과거에는 대의적인 측면을 가진 미덕이었다면, 이제는 더 경쟁력 있는 삶을 위한 미덕이 되었다. 내 집 마련의 꿈 또한 이제는 사행성을 조장하는 꿈이자, 상대적 박탈감을 들게 하는 꿈으로 변모하였다.

 

시대 변화가 빠른 사회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일의 의미는 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와 국민의 관계, 금전과 자산이 가졌던 의미가 계속해서 재구성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문화영화는 시대와 사회가 원하는 의미가 재구성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 유용한 사료였다. 문화영화에서 그려졌던 금융의 의미와 금융이 권장되는 방식과 서사는 다양한 의미가 해석될 수 있는 장(場)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영상을 통해 금융을 배워야 했던 시대는 어떤 측면에서는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영상으로 금융생활을 계도하던 지난 문화영화를 보고 있으면, 오늘날 쏟아지는 정보 수용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 정보가 주어지는 환경에 대해 관조할 필요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