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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조상경이라는 아카이브 2024.10.28 514
지금 여기, 조상경이라는 아카이브
한국영상자료원에 의상 기증한 조상경 의상감독 인터뷰
 
글: 남선우(씨네21)
사진: 오계옥(씨네21)


의상감독 조상경


21세기가 동틀 무렵부터 영화 의상을 만져온 조상경은 이제 ‘정리’를 생각한다. 올 한해에만 영화 <파묘> <리볼버> <전, 란>과 드라마 <정년이>로써 결과물을 내보였으며, <현혹> <다 이루어질지니> <사마귀>와 같이 주목받는 신작 시리즈 의상 기획에 심혈을 기울이는 와중에도 그렇다. 물론 그가 구상하는 정리는 어떠한 처분 혹은 완료가 아닌 ‘가지런히(整) 다스린다(理)’라는 본뜻에 걸맞은 종류의 것이다. 그는 늦지 않게 20년 넘게 축적한 필모그래피를 복기하고, 새 동료들을 위한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한 의상도, 오랜만의 인터뷰도 그 기록의 일환으로 삼겠다면서. “크레딧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시작해 여전히 이상하게 일하는 중”이라 후배들이 겪을 시행착오를 알아서일까. 자신의 내향성이 작품, 나아가 직종 전체에 대한 책임감과 끊임없이 마찰해왔다고 고백하면서도 줄곧 이 업의 지속가능성을 질문해온 그다운 계획을 들은 듯했다.

조상경과의 대화를 위해 찾은 성남의 곰곰영화의상연구소, 일명 스튜디오 곰곰도 마침 정리 중이었다. 철문 바깥에서 정체를 알아보기 힘든 소품 잔해들과 조금 외로워 보이는 회전의자를 마주쳤다. 초인종 소리에 나온 의상감독은 내부가 어수선할 수 있다며 양해를 구했는데, 이미 한번 정돈을 거친 공간은 그 자체로 드넓은 아카이브였다. 공교롭지만 그와의 인터뷰도 다르지 않았다. 이 긴 글은 어느 영화 의상 전문가의 작업기를 다소 어수선하게 들려줄지도 모르나 그 주인공은 수차례 내면의 문답을 고쳐쓰며 어느새 한국 영화 의상의 아카이브 한 채로 곧게 자리하고있었다. 그렇게 지금 여기에 선, 조상경이라는 아카이브의 문을 두드렸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더 문>(2023), <헌트>(2022), <오징어 게임>(2021) 등의 의상을 기증하셨어요. 의상이 어떻게 쓰이길 바라세요?
박물관처럼 진열이라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전, 란>(2024)을 준비하며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를 참고했고, <현혹>을 하면서 <암살>(2015)을 다시 봤듯 의상, 미술 일하는 분들이 도서관 가듯 자료원에 가서 기증품을 살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다른 팀 작품이 궁금하거든요. 다들 폐쇄적으로 일하고, 정리가 안 되면 잊히니 영상자료원이 단순 보관의 개념을 넘어 작업자들을 위한 자료실 역할까지 해줬으면 해요.
 
정리가 안 되면 잊힌다는 말이 뼈아프네요.
올해로 곰곰으로서 일한지 11년차인데 이제야 기록의 필요성을 느껴요. 제가 영화계에 ‘의상 디자이너’라는 크레딧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시작해서 여전히 이상하게 일을 하고 있거든요. (웃음) 그냥 곰곰만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어요. 내성적인 제 개인의 성향과 이 판에서의 책임감, 의무감 사이에서 힘든 상황이니 더욱 과거를 돌아보고 싶은 거예요. 곰곰 안에 있는 40명을 위해서라도 그 작업이 필요하다 싶죠. 곰곰이 블로그, 인스타그램, 홈페이지 모두 운영하지 않아요. 안 해도 섭외가 들어왔고요. 그래도 이제는 한번쯤 내가 해온 일을 짚고 넘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의상감독 조상경

어떤 형태로 정리하고 싶으세요?
한 각본가의 홈페이지가 인상적이었어요. 그 분은 방문자들이 거기서 파일을 다운 받아 대본을 읽을 수 있도록 자신이 쓴 것을 그곳에 다 올려두셨더라고요. 최근에 다시 들어가니 폐쇄되어 아쉬웠는데, 그런 식으로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시작해 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여태껏 기록을 못 한 이유가 있어요. 저는 작품을 할 때 스태프 입장에서 계약하잖아요. 그러면 모든 결과물이 영구적으로 제작사에 귀속돼요. ‘영구적으로’라는 말만 빼달라고 해봤지만 해주지 않더라고요. 선례가 없어 계약서를 고치기 어렵대요. ‘작업물로 무언가 하고 싶다면 해도 된다, 태클 걸지 않겠다’라면서요. 그게 2006년도 이야긴데, 아직 변한 게 없어요.
 
벌써 20년 전이네요.
그때 왜 좌절했냐면, 아무도 그런 요구를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왔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에요. 음악감독들은 저작권을 갖고 있는데, 미술 쪽에서는 저 혼자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돼버린 거죠. 제가 얘기를 해도 다들 각자의 작업을 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발전적으로 논의가 이어지지 못했어요.
 
책임감과 의무감에 지친 상태라고 하셨는데, 시스템에 대한 회의도 크셨나봅니다.
저는 남 탓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해요. (웃음) 그래서 남 탓을 좀 하자면, 올해 제가 두 편의 영화와 몇 편인지 세기도 어려운 숫자의 시리즈를 작업하고 있거든요. 너무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지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 싶어요. 모든 작품이 너무 다른 체급과 취향을 가졌기에 온갖 장르를 다 보고 있거든요. 너무 다른 작품들을 위해 서치하고, 디자인하는 걸 10년 넘게 해왔으니 지쳤죠.
 
그래서 안식년도 계획하셨던 걸로 알아요.
2021년, 2022년에 원래 안식년을 가지려 했죠. 주변에도 그렇게 얘기했고요. 쉬었다기보다는 일의 방식을 바꾼 기간이었어요. 곰곰 실장들에게 책임을 더 많이 주고, 저는 슈퍼바이저로서 뒤로 빠져서 초반 작업을 설계해주는 식으로 일했어요. 그러다 보니 작품마다 제가 다 다른 방식으로 관여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건 시작부터 끝까지 손을 뗄 수가 없었고, 어떤 건 촬영이 시작되니 손을 털 수 있었고요. 이런 변화가 영화 작업에선 가능했어요. 완결된 시나리오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보니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오징어 게임>이나 <다 이루어질지니>는 촬영 전 대본이 완결됐어요. 그럼에도 드라마 프로젝트는 여전히 변수가 많아요. 제 성격이 유연하고 충격에 둔하다보니 그냥 받아들인 셈이죠. 그래서 말로는 지쳤다, 피곤하다고 하지만 그냥 또 해요. (웃음)
 
실장들에게 역할을 더 부여하는 방향을 추구하며 리더로서 관점이 달라지기도 했나요?
실장들마다 성격과 일하는 방식이 다 달라요. 그들이 현장에서 보여주는 대처 능력에 제가 배울 때가 있죠. 나라면 저렇게 못했을 텐데 싶은 지점이 있으니까요. 사실 저는 저랑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좋아해요. 오히려 저 같은 성격하고는 작업을 못해요. 이를테면 저는 제가 내성적이기 때문에 실수했던 지점들을 알잖아요. 그런데 외향적인 친구들이 현장에서 리더십을 보여주거나 배우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스럽죠. 그렇게 서로 놀라워하며 배우는 것 같아요. <정년이>(2024)도 그런 기회를 준 작품 중 하나예요. 곰곰 구성원들이 저라면 못했을 것들을 많이 해냈거든요.
 
<정년이> 국극 의상(사진 제공=디즈니+)

* <정년이> 국극 의상 (사진 제공=디즈니+)

예를 든다면?
<정년이>는 드라마 중에서도 준비를 빨리 시작했어요. 감독님께 국극 공연팀 캐스팅을 빨리 해달라고 요청했죠. 국극 의상을 다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무대 의상을 해봤지만 저희 팀에 무대 의상을 해본 친구가 없었어요. 제가 방법을 가르쳐주는데 아이들이 너무 재미있어 하는 거예요. 다양한 이력을 가진 친구들이 합심해서 1950년대의 재료와 솜씨를 고려해가며 작업하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네 번 정도 큰 테스트를 했는데, 분장팀과의 합도 참 좋았고요. 배우들도 작품에 대한 애정이 넘쳤어요. <정년이>가 마이너한 소재를 다루고, 그 흔한 ‘남주’(남자주인공)도 한 명 없잖아요. 그래서 작품이 잘 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결국 현장의 합이 좋았기 때문에 걱정이 해소된 것 같아요. 사실 단순한 거잖아요? 그런데 그 단순한 걸 못하는 현장을 너무 많이 봤어요. 그러니 실장들부터 막내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일하는 걸 보면 가끔 감동받죠. 그들이 더 준비를 많이 하고, 공부를 많이 할 수 있도록 호흡을 길게 가져가고 싶어요.
 
그래서 더욱 그간의 작업을 아카이빙하고 싶으시군요.
네. 저희 팀 20대들에게 인생 첫 영화를 묻곤 하는데, 작년에 뽑은 아이들이 <왕의 남자>(2005)와 <괴물>(2006)을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극장에서 본 영화가 <괴물>이라는 거예요. 이제 제가 참여한 작품들을 보고 여기 온 직원들과 섞여서 일해야 하니 내가 해온 작업을 제대로 복기할 필요를 느낀 거죠. 물론 여전히 저는 잘 털어내는 편이에요. 아까 말한 것처럼 그래야 정신건강에 좋으니까. (웃음) 우리 직업이 찍히면 끝나는 일이잖아요. 제가 아쉽다고 한 번 더 찍자고 할 수는 없어요. 후회하지 않도록 훈련된 거예요. 그래도 예를 들어 <현혹>이라는 작품을 준비하면 일제강점기가 배경이었던 <미스터 션샤인>(2018)이나 <아가씨>(2016) 같은 제 과거 작품들을 끄집어내서 이것저것 섞어보죠. <아가씨>만 해도 10년 전이라 제대로 된 서치와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껴요.
 
다음 세대를 위한 고민으로도 들리네요.
저희 작업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동대문 시장이나 제조 업계에 팬데믹 이후에 어려워진 곳이 많아요. 장인 선생님들 연배도 점점 올라가고요. 오랜만에 연락드린 매듭장 선생님이 최근에 돌아가셨는데, 생각해보니 가장 마지막에 뵈었을 때도 이미 80대셨더라고요. 이런 상황을 바라보면서 한복 제작하는 저희 팀 친구에게 말했어요. 늦기 전에 구혜자 선생님께 바느질 배우라고. 침선장 구혜자 선생님이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의 한복을 만든 분이에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건 우리 팀원들에게 그렇게 배울 시간을 따로 주는 거겠죠.
 
 

"제겐 근거가 있었어요"

정년이_체크 저고리(제공 디즈니+)
* <정년이> 체크저고리 의상 (사진 제공=디즈니+)

한복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정년이>의 체크무늬 저고리가 소소한 논란이 되었을 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 묻고 싶어요. 체크 저고리가 1950년대에 가능한 복장인지를 두고 SNS상에서 갑론을박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여러 패턴과 소재의 한복이 존재했다는 증거들이 등장하며 반발이 수그러들었죠.
아름답지 않나요? 그렇게 사람들이 작품의 의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풍경이요. 패션지에 기사로도 나왔더라고요.
 
그 흐름을 지켜보면서 ‘한복은 이럴 것이다’라는 내 안의 편견을 돌아보게 되더군요.
그래서 제가 의상에 대한 블로그라도 해야 하나 싶은 거예요. 그런 논란이 일 때마다 제가 답을 다 해주기도 어렵고……. 그런데 저는 고증 관련한 얘기는 가끔 해왔어요. 제가 한 첫 사극이 <후궁: 제왕의 첩>(2012, 이하 <후궁>)인데, 그 작품 의상에 대한 사람들의 호불호가 확 나뉘었거든요.
 
(좌측부터) 후궁_제왕의 첩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상의원 (사진 제공=쇼박스)

* (좌측부터) <후궁_제왕의 첩>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상의원> (사진 제공=쇼박스)

<후궁>은 가상의 왕을 설정해서 시대적 배경을 불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았나요?
실존했던 어떤 왕 시절이었는지 정확하게 나오진 않지만 이야기상으로는 조선 초기가 배경이었죠. 의상의 모티브로 삼은 것도 그 시대였고요. 처음 사극을 하니 복식사 공부를 6개월 간 했는데, 무작정 한복 하는 선생님들을 찾아갔어요. 한복 하는 분들이라면 역사도 다 아실 줄 알았던 거죠. 그런데 옷 짓는 일 자체에 집중해온 분들이 많아서 꼭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제 질문에 답을 해주시는 분은 딱 한 분이었어요. 그 분이 임권택 감독님과 작업한 김혜순 선생님이에요. 그 뒤로 교수님들도 찾아뵙고, 박물관에 다니면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깜짝 놀란 거예요. 아는 만큼 보인다잖아요. 조선시대가 500년인데, 500년 동안 한복도 계속 변화해왔더라고요. 서양 복식을 볼 때면 로코코풍인지, 빅토리아 시대 옷인지, 엘리자베스 시대 옷인지 구분이 되었는데, 우리나라 옷은 14세기 조선부터 19세기까지를 그냥 ‘한복’이라는 개념으로 퉁쳐온 거예요. 스스로 창피해졌어요.
 
그 깨달음이 <후궁>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후궁>의 시나리오를 보고 감독님께 이 이야기에 제일 맞는 실루엣은 조선 초기 복식인 것 같다고 제안했죠. 그렇게 감독, 미술감독과 톤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공연하듯이 연극적으로 장면을 다 설계했어요. 그럼에도 관객들에게 조선은 기본적으로 15, 16세기인 거예요. <후궁>의 의상을 낯설게 받아들인 거죠. 하지만 제겐 근거가 있었어요.
 
그러다 아예 왕실 의복을 주요 소재로 삼은 영화 <상의원>(2014)의 의상까지 맡았어요.
욕먹기 딱 좋겠다 싶었어요. (웃음) 사가(私家)의 옷은 멋대로 할 수 있지만 왕실 옷은 함부로 만들면 안 되잖아요. 이원석 감독에게도 왕실 옷은 내가 디자인할 수 있는 옷이 아니라고 전했죠. 그럼에도 이야기가 말이 되도록, 돌석(한석규)과 공진(고수)의 캐릭터에 맞게 의상을 영화에 녹여야했기에 16세기 옷과 조선 후기 옷을 섞은 거예요. <상의원> 작업을 이화여대에 계신 선생님들과 함께했는데, 제가 선생님들을 섭외했어요. 그 과정에서 그 분들이 <후궁>을 봤다며 하신 말씀이 있어요. “네가 복식사를 공부했다는 걸 알겠다. 학생들에게도 조선 초기 여성 옷을 보려면 <후궁>을 보라고 얘기한다.” 이렇게 시대극, 코스튬 드라마를 할 때는 그 분야 관련자들이 기준점이 될 수밖에 없어요. <고지전>(2011) 할 때도 ‘밀덕’(밀리터리 덕후) 분들한테 흠 잡히지 않으려고 했죠.
 
리볼버(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리볼버> (사진 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그러다 올해 개봉한 <리볼버>(2024) 같은 현대극 작업을 하면 긴장이 한결 풀리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인물들의 총천연색 패션을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저예산이고, 이야기는 직선적이고, 캐스팅은 화려했어요. 그러니 오히려 의상은 하나도 조화롭지 않게 해야겠더라고요. 인물들 각자 설정에 따른 키워드가 하나씩 있으니 거기에 맞추되 서로 어울리지 않아도 된다, 전체 톤에 적합한 컬러 팔레트만 맞추면 서로의 스타일링은 조화롭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극중 전도연 배우와 임지연 배우가 계속 같이 다니지만 그들이 옷 입는 스타일이 어울릴 필요는 없잖아요? 오히려 충돌하는 이미지가 좋을 것 같았어요. 물론 오승욱 감독님 영화는 리얼리티에 베이스를 두고 있으니 이런 의상이 좀 센 것이 아닌지 당황하는 배우도 있었어요. 그런데 배우가 갖는 그 느낌이 오히려 역할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저는 배우를 캐릭터가 아닌 본연의 모습으로 상대할 때의 모습도 작업에 응용하는 편이거든요. <전, 란>으로 강동원 배우와 재회했을 때도 그랬어요. <군도: 민란의 시대>(2014) 때 테스트하면서 강동원 배우에게 수염을 붙여봤다가 바로 뗐어요. 팬들이 안좋아 할까봐요. 그런데 이제는 배우가 40대니 어울리지 않을까, 한 번 해볼까 싶더라고요. 그렇게 배우의 얼굴에서 성숙해져가는 시간의 흔적을 발견할 때가 좋아요. 그런 점을 캐릭터에 활용할 수 있죠.
 
반면 최근작 <댓글부대>(2024), <화란>(2023)은 신인 배우, 신인 감독과 작업했어요. 아는 바가 많지 않은 사람들과의 작업에는 어떻게 접근하는 편인가요?
저는 신인 감독들과 은근히 작업 많이 했어요. 류승완, 최동훈 감독도 처음 만났을 땐 신인이었고요. 만드는 사람이 흥미로우면 작품도 흥미로울 거라고 기대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감독들 캐릭터를 파악하려 사전에 대화를 많이 해요. 그리고 제가 제일 선호하는 감독은 전 작품이 망한 감독이에요. 흥미와 더불어 전투력이 생겨요. 전작이 왜 잘 안 됐을지 탐구하는 거죠. 물론 제가 그리고 싶은 지도와 감독이 원하는 지도가 다를 때가 있어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말이 통하는 사람 내지는 그런 프로덕션하고만 일해야 하나 싶기도 해요.
 
‘사단’처럼 움직이면서 폐쇄적으로 일하는 건 싫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요! 그게 고민인 거예요. 나는 조각을 하는 줄 알았는데 상대는 페인팅을 하고 있단 걸 느낄 때면 부아가 치밀긴 하는데……. 이해가 안 되시죠? (웃음)
 
어떻게 보면 작품에 대한 주인의식 아닐까요?
‘오지라퍼’인 거죠.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건 2년만 더 하고 그만하려고요. 진심이에요.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다녀요. 곰곰의 시스템을 만드는 데 5년을 썼는데, 2년만 더 이렇게 일하면 저는 곰곰을 관리하는 역할에 더 집중하면 될 것 같거든요. 너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해요.
 
 

AI가 할 수 없는 일

의상감독 조상경

지금 곰곰 구성원은 몇 명인가요?
40~45명 선까지가 딱 제가 개인으로서 다 상대할 수 있는 숫자더라고요. 그들의 이력부터 각자가 처한 상황까지 파악하면서 관리할 수 있는 인원이 그 정도예요. 그런데 작품이 줄어도 인원을 줄이지 않고, 사람을 더 뽑으니 저희 실장 한 명이 그러더라고요. 긴축하면서 재고 파악해야 할 때인데, 돈 아껴야 한다면서 왜 자꾸 사람을 뽑느냐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급하지 않을수록 사람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어떤 이유에서요?
제 입장은 단순해요. 열 명을 뽑아도 결국 한 명 남아요. 미리 뽑아두는 이유는, 예를 들어 사극을 하는데 의류학과 나온 친구들이 ‘패션’만 알지 한복을 몰라요. 복식사도 모르고 시나리오도 한 번 읽어보지 않았어요. 그들도 인턴처럼 트레이닝 과정이 필요한 거예요. 이렇게 투자하지 않으면 그들이 쫓아오지 못해요. 그래서 인턴 기간이라 생각하고 미리 사람을 뽑는 거예요.
 
그들이 그 기간 동안 익혔으면 하는 태도는 무엇인가요?
저는 솔직히 영화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지 않아서 영화를 안 보고도 살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왕 만들 거니까, 적어도 제가 영화를 처음 할 때는 이 대본과 우리가 하는 공동 작업이라는 행위에 정말 집중해서 만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이 영화에 필요한 걸 더 잘 찾을 수 있을지,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당연히 그래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나온 작품이 <올드보이>(2003), <범죄의 재구성>(2004), <달콤한 인생>(2005)이에요. 처음 영화를 할 때는 그렇게 우리가 보고 싶은 영화를 함께 만드는 기분이었어요. 같이 작업한 감독님들이 기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으니 저도 운이 좋았죠. 그런 말을 참 많이 했어요. 하필이면 박찬욱 감독님을 만났다고! (웃음)
 
그런 영화인들 틈에서 영화에 대한 열성이 밀린다는 게 신경 쓰이지는 않으셨어요?
네.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거랑 다르잖아요. 그냥 모두 잘했으면 좋겠어요. 잘하지 못하면서 열심히도 안 하는 게 나쁜 거예요.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좋아하는 척만 해요. 그런 사람은 열심히라도 좀 했으면 하는 거죠. 20년 전 박찬욱 감독님 현장에서 만난 스태프들이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모두들 영화를 만든다는 감동에 빠져 시나리오를 아주 소중히 대했어요. 100번이고 읽으니 저절로 외워졌고요.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작업 방식이 많이 바뀌어서 요즘 아이들은 대본을 못 외워요. 시나리오의 순서를 모르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일은 여전히 무척 아날로그적이에요. 현장에서 아무리 디지털로 찍어도 AI가 연기를 하고 있지는 않잖아요. 배우가 연기를 하는 한 저희도 실체를 갖고 물성을 다루는 일을 하는 거예요. 그 물성을 화면에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시간을 쏟는 건데 둔해져서는 안 되겠죠. 구글에서 사진으로 보는 것과 박물관에 직접 가서 만져보는 것은 달라요. 우리는 판타지를 좇는 사람들이잖아요. 감각을 사용해서 AI가 못하는 걸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비전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를 안 보고도 살 수 있는 분이 어떻게 20년 넘도록 영화 일을 했는지 신기해요. (웃음)
그렇다고 달리 할 일도 없고, 여전히 흥미로운 세계이긴 하니까요. (웃음) 어쩌면 이 일을 진정으로 원해서 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면이 오히려 요즘 20대 팀원들이나 제 딸과 얘기할 때 통하는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은 없었지만 주어진 일을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감각이 비슷하죠. 그러다 보니 요즘 많은 영화인들이 작품 없다고 하지만 저는 여전히 똑같이 일이 많고…….
 
그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 같나요?
저도 생각해봤어요. 왜 나는 원하는 게 없는데도 여전히 무언가를 하고 있지? 그런데 그게 제 성격인 거예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게 아이러니거든요. 말과 행동이 다를 때 나오는 유머를 좋아해요. 결국 스스로 이런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도 같은데, 그나마 제가 내린 결론은 일을 오래 하는 이유가 제 실력이 아닌 캐릭터에 있다는 거예요. 성격 자체가 욕심내서 상대를 설득하려 애쓰기보다는 포기가 빨라요. 단점일 수도 있는데 점점 상대에게 맞춰주는 방식으로 일을 해왔어요. 연출자들이 정말 제각각이잖아요. 어떤 방송국 출신인지에 따라서도 스타일이 다르고요. 그걸 파악하는 시간을 갖고 맞추려고 해요.
 
이 시점에서 새롭게 도전하고픈 욕심은 없으세요? 이를테면 해외 진출 같은. <오징어 게임> 이후 제안이 많았다고 들었거든요.
제가 항상 얘기하거든요. 기술 파트는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의상은 사람을 상대해야 해서 힘들 것 같다고요. <만추>(2011)를 하면서도 중국인의 삶이나 미국 생활에 대해 전혀 모르니 어려웠어요. 그 시절 유행가라든지 정서적인 것을 전혀 모르니까 어렵죠. 인종이 다른 인물들이나 타국의 코드를 다루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컬러의 상징성도 문화권마다 다르고요. 내가 표현한 것이 문화적으로 다르게 읽히면 어떡해요? 그런 부분에 대한 강박이 너무 커요. 이 광범위한 리서치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는 거죠. 아시아권 작품 제안이 오기도 하는데 겁나서 못하겠어요. 타문화에 대한 존중 없이 무식한 짓을 저지를까 봐요. 아직 한복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그러겠어요.

 

사사로운 것들의 매혹

타짜(사진 제공=싸이더스)
* <타짜> (사진 제공=싸이더스)

작업한 것 중 여러 번 보게 되는 작품도 있나요?
이상하게 TV에 <타짜>(2006)가 많이 나와요. TV 틀어서 나오면 그냥 봐지더라고요. 최동훈 감독도 그렇대요. 감독님과 제가 한 살 차인데, <타짜>가 30대 중반에 만든 영화예요. 둘 다 지금은 그렇게 못 만들 것 같다고 얘기하곤 해요. 애증의 작품인 것 같아요.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고요. 어린 나이였지만 당시에 영화 여섯 편을 작업하고 있었거든요. 기절하면서 일하던 때였는데, 그런 시기였기 때문에 <타짜>를 더 개인적인 감정을 품고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냥 재밌고 유쾌한 추억의 영화가 된 거죠.
 
다른 의미로 종종 떠올리는 작품은요?
미술과 의상을 겸한 <카페 느와르>(2010)요. 제 상태가 안 좋을 때였는데, 정성일 감독님이 열정 넘치니까 그 온도를 쫓아가게 되더라고요. 감독님을 팬심으로 만나서 많이 배웠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온실 속에서 작품만 놓고 고민하며 작업했는데, 처음으로 그 외적인 고민을 하게 된 시기이기도 했고요. 영화계가 되게 어려웠을 때거든요. 그런데 저는 원래 웬만하면 제가 한 작품 잘 안 봐요. 레퍼런스를 찾으려고 해도 제가 했던 건 다 기억이 나니까 어떤 장면을 보라고 직원들한테 다 알려주죠. 그러면 20대 아이들이 놀라요. 만든 사람은 다 기억하거든요. 요즘은 레퍼런스로 남의 작품을 오히려 많이 봐요. 그러면서 세상에 이렇게 콘텐츠가 많다니 놀라죠.
 
최근에는 어떤 작품이 맘에 들던가요?
애플TV+ 시리즈 <슬로 호시스>. 40, 50대 남자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좋아할 수밖에 없죠.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보다 훨씬 순한 첩보물이에요. 게리 올드만이 주연인데,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를 한다면 최민식 배우가 했으면 좋겠어요. 시즌 3가 제일 좋았어요.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인상적이었어요. 한편으로는 영화를 이렇게 만들어버리면 더 대중과 멀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요. (웃음)
 
한국 작품은요?
<다음 소희>(2023)가 기억나네요. 보면서 울컥한 장면들이 있었어요.
 
일하지 않을 때는 무얼 하세요?
옛날 사람들, 이미 죽은 사람들 인터뷰 찾아보는 게 취미예요. 그 사람들 작품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궁금하거든요. 인스타그램에서 특이한 작업을 보면 아티스트에게 DM을 보내서 만나자고 요청하기도 해요. 만나서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면서 하루에 몇 시간 자는지, 일요일에 뭐하는지 물어봐요. 그런 사사로운 것들에 관심이 있어요.
 
기자를 하셔도 좋았겠어요.
기사 쓰는 아르바이트도 해봤어요. (웃음) 무슨 내용을 썼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20대 때 아르바이트를 다양하게 해봤거든요.
 
어떤 사람들의 사사로움에 관심을 두세요?
1960년대에서 1965년대 생들? 이제 막 정년퇴직하는 세대거든요. 여전히 왕성하게 작업하는 분들도 있고요. 나이가 많지만 너무 건강하고, 많은 걸 누려온 세대잖아요. 그래서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어요. 실은 제가 40대일 때는 50대가 궁금했어요. 그런데 50대 언니들이 다 너무 상태가 안 좋은 거예요.
 
신체적으로요, 정신적으로요?
둘 다요. (웃음) 그들의 작업도 재미없어 보이고, 뭔가 다 안 좋아 보이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느 전시에 가서 박물관 학예사 분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 중 60대 선생님들을 만났는데, 그 분들이 파이팅이 넘치는 거예요. 궁중 한과를 소개해주셨는데, 작고 소박한 과자 하나에 얽힌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하는 그 눈이 반짝거리더라고요. 당시 제가 제 윗세대는 물론 후배들에게서도 못 느꼈던 에너지였어요. 그 기운의 정체가 궁금해서 그 선생님들 작업을 한동안 찾아봤었죠. 어떤 여유에서 나오는 관점들이 참 좋더라고요. 그런 여유를 가진 분들이 아카이브에서 자원봉사를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 분들이 해온 작업도 결국 지금까지의 자취를 ‘정리’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요새 특별히 정리하고 싶은 게 있으세요?
항상 최악을 생각하는지라 언젠가 작업을 안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된다면 창고부터 좀 정리하고 싶어요. 우리 작업에서 리사이클도 아주 중요한데, 외부 작업이 없으면 창고에 쌓인 물품을 재활용해서 판매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걸 갖다 버리면 너무 환경오염이에요. 기부도 하지만 항상 뭔가가 많아요. 제작사나 영상자료원에 가져다줘도 표가 안 나니 문제예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곰곰 블로그를 열어서 그간의 작업물도 정리해주세요.
여유 있는 분들이 참여해주신다면 아카이빙에 돌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시작하면 알려드릴게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