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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홍길동부터 하츄핑까지-이제 우리 애니메이션을 ‘다시’ 이야기할 차례 2024.10.29 438
홍길동부터 하츄핑까지
-이제 우리 애니메이션을 ‘다시’ 이야기할 차례

1. 애니메이션 필름 디지털 복원 포럼

글: 박수용(씨네21)
사진: 백종헌(씨네21)


애니메이션 디지털 복원 포럼 발제자 및 진행자
* (좌측부터) 모은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디지털복원팀 조해원 차장, 야노스 몰나르 복원 스튜디오 팀장, 통역, 나호원 평론가, 한태식 중앙애니메이션 대표

<사랑의 하츄핑>이 120만 관객을 불러 모으는 시대. 부푼 마음에 ‘한국 애니메이션’이라는 범주를 섣불리 입에 올리기에는 우리 이 단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지금 활약하는 세대의 뿌리가 되었던 2000년 이전의 애니메이션으로 시선을 돌려본다면 더욱 그렇다. 고유한 예술적 영토이자 하나의 연구과제로서 한국 애니메이션 전반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실정이다. 더욱 활발한 논의를 위한 소중한 첫걸음으로 지난 10월 19일 시네마테크KOFA 2관에서 ‘애니메이션 필름 디지털 복원 포럼’이 개최되었다. 모은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진행을 맡은 이날의 포럼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기술적 발전에 대해 개괄한 1부와 한국과 헝가리의 애니메이션 필름 복원 성공 사례를 소개하는 2부로 구성되었다. 발제자로는 서울엔애니메이터 에디터이자 애니메이션 연구자인 나호원 평론가, 한태식 중앙애니메이션 대표, 한국영상자료원 디지털복원팀 조해원 차장과 헝가리국립영화연구소-필름아카이브 복원 스튜디오 팀장 야노스 몰나르가 참여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쓰는 출발점”(나호원 평론가)에 섰다는 연대 의식으로 모두가 깊게 집중했던 이번 포럼에서 발제가 이루어진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역사를 말하기 전, 선결되어야 할 질문들

나호원,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 쓰기의 어려움들'

애니메이션 홍길동
* 애니메이션 영화 <홍길동>(1967, 신동헌)
* 이미지를 누르시면 애니메이션 영화<홍길동>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역사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모든 역사화 작업이란 불투명한 인과관계와 반성적 주관성과의 끝없는 씨름을 동반하며 비교적 사료가 풍부하지 않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경우 더욱 그렇다. 이에 “역사 쓰기의 어려움”이라는 발제문을 선택한 나호원 평론가는 역사 쓰기에 수반되는 일곱 가지 질문을 던짐으로서 한국 애니메이션사의 모호한 공백을 짚어낸다. 먼저 작품의 단순한 연대기적 나열의 한계다. 모든 작품이 남아있지도 않을뿐더러 상영 기록 등 사료의 신뢰성 또한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업용 장편 극장 애니메이션 이외에도 TV 시리즈, 독립 제작물 및 광고영상 등 어디까지를 ‘작품’으로 볼 것인지도 문제다. 더불어 호황과 침체가 반복되며 나타나는 연대기상의 ‘빈 공간’은 국가정책의 불연속적 변화에 따라 급변해 온 애니메이션 제작 시장의 방향성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작품 단위가 아닌 제작자를 중심으로 역사를 읽는 것은 가능할까. 이를 위해서는 한국 애니메이션 속 감독과 스태프의 역할, 스튜디오의 철학과 지속성 등에 대한 연구가 선결되어야 한다. 60년대의 애니메이션 제작은 반공 정권의 영향과 외화수입 쿼터로 인해 문화영화 애니메이션을 전략적으로 생산하던 자본의 이해관계 아래에서 움직인 시장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역사 속 정전의 취사선택을 위해 과연 무엇을 성취의 기준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 나호원 평론가는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의문으로도 포착되지 못할 애니메이션사의 누락된 지점들을 소개한다. 장편 애니메이션의 시초로 간주하는 <홍길동>(1967, 신동헌) 이전의 역사가 있으며 미학적 발전에 선행하는 기술사적 맥락, 최종적으로 해외 외주 작업을 오랜 기간 진행해 온 스튜디오들의 지워진 역사 등이 시급한 발굴 지점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숨겨진 조력자

한태식, '한국 초기 애니메이션 기술사를 위한 몇 가지 단초들'

한태식 대표

거시적 역사화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한다며 발제를 시작한 한태식 대표는 대신 미시사적 영역인 한국 초기 애니메이션의 기술사 속 몇몇 사례들을 소개했다. 애니메이션을 정의하는 기술은 크게 타이밍이나 추상화 등 미학적 요소라 할 수 있을 애니메이팅 기법과 카메라, 광학 효과 등 장비의 차원인 프레임 촬영 기술로 나눌 수 있다. 이중 전자에 있어 흥미로운 점은 이미 1930년대부터 애니메이션 제작 방법론에 관한 기록이 상당히 온전한 상태로 전수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1933년 신동아지에 실린 기사 “토키-만화가 되기까지”에는 2초 분량의 애니메이션의 제작 상세와 동체전표(바시트, bar-sheet)까지 수록되어 있다. 이는 애니메이션 제작기술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최초의 문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하지만 장비, 즉 물리적 기술력의 제한적 보급은 대대로 한국 애니메이션 발전의 병목이었다. 이때 장비의 발전을 이끌었던 기관이 1947년 미군정 당시 설립된 미국 공보원(USIS)과 1948년 설립된 공보처 공보국 영화과(이후 국립영화제작소)였다. 두 기관은 미국으로부터의 적극적인 기술 이전과 정부 지원을 통한 최신 장비의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이미 1950년대 중반 세계 애니메이션 장비의 표준인 옥스베리 스탠드를 사용할 수 있었고, 1959년에는 영화과 최초의 애니메이션인 <쥐를 잡자>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민간 영역에서는 자막실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영화자막을 수평 카메라로 촬영했던 자막실은 자연히 애니메이션 콤마 촬영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특히 충무로의 가장 큰 자막제작소였던 대영자막실은 <홍길동> 등의 촬영이 진행되었던 곳으로, 당시 수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 촬영 기기를 제작했던 전원춘 선생과 함께 초기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숨겨진 조력자로 활동했다.
 

 

필름에 갇힌 빛바랜 그림들을 꺼내는 손길

조해원, '한국영상자료원: 애니메이션 필름 디지털 복원 성과와 <성웅 충무공> 복원 과정 소개'

<성웅 충무공> 복원 과정 소개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 디지털복원팀 조해원 차장은 2부의 첫 발제자로 나서 영자원의 애니메이션 필름 디지털 복원 성과를 소개했다. 영자원은 2021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 편성을 받아 애니메이션 필름 작업에 착수했다. 2021년 <홍길동>, <아기공룡 둘리>(김수정/임경원, 1996) 등 5편을 시작으로 3년간 총 18편을 복원했다. 별도 예산을 편성 받지 못한 올해는 <성웅 충무공>(이용민, 1958)의 자체 복원 작업만을 진행하게 되었다.
애니메이션 필름의 복원 과정은 일반 필름과 동일하게 필름 점검 보수, 화면 및 음향의 디지털 스캔, 편집, 색 재현, 음향 및 화면 디지털 복원의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조해원 차장은 <성웅 충무공>의 가장 중요했던 복원 공정으로 디지털 색 재현을 꼽았다. 김용환 화백이 그린 원화의 색감을 정확히 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던 지점이다. 다행히 실제 원화의 소장자를 만나 원화의 색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고, 여러 컬러 스캐닝 방식을 테스트해 본 결과 가장 원화의 색감과 비슷하며 추출되는 색의 정보도 가장 많은 리니어 스캔 방식을 적용해 복원을 진행했다.

임진왜란 종전 360주년 기념 사업으로 제작된 교육영화인 <성웅 충무공>은 고정된 그림 위로 카메라를 움직이거나 확대 및 축소하여 화면의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키네스타시스(kinestasis)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1콤마씩의 수단에 의해 창조된” 움직이는 이미지라는 애니메이션의 정의를 따른다면 사실 <성웅 충무공>을 애니메이션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는 그 자체로 긴 논쟁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만화영화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던 시절 혁신적인 촬영 기술을 처음 적용한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필름이라는 물리매체에 담겨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중요한 영상유산을 보존하는 근본적인 목표에 충실하자는 영자원의 판단 덕분에 <성웅 충무공>은 본래의 빛을 찾아 지금의 관객에게 닿을 수 있었다.


 

가스파컬러, 삼원색의 마법

야노스 몰나르, '헝가리 필름아카이브: 가스파컬러 기술의 복원 도전 과제'
 


헝가리국립영화연구소 필름아카이브의 복원 스튜디오 팀장 야노스 몰나르는 헝가리 애니메이션의 아버지라 불리는 귈라 막스카시(Gyula Macskássy)의 단편 광고영상을 복원한 과정을 들려주었다. 막스카시의 영상은 헝가리의 화학자 가스파 벨러(Gáspár Béla)가 1932년에 개발한 컬러 필름인 가스파컬러(Gasparcolor)로 촬영되었다. 가스파컬러 필름은 빨강, 파랑, 초록의 색에 각각 반응하는 세 개의 필름을 겹쳐 놓은 형태로 구성된다. 먼저 흑백 네거티브를 촬영한 후, 그 위에 각 색의 필터를 씌워 가스파컬러 필름에 노출시키면 각각의 색에 반응하는 층에 이미지가 기록되는 방식이다.
정교한 구조의 필름인 만큼 복원 과정도 쉽지 않았다. 여러 겹의 필름이 붙어있는 형태이다 보니 디지털 스캔을 거치면 색상이 변화하거나 초점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붙어있던 필름들이 조금씩 뒤틀려 각 색마다 이미지의 위상차가 발생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야노스 몰나르가 이끈 복원팀은 가스파컬러의 제작 순서를 반대로 뒤집었다. 말하자면 스캔된 컬러 디지털 파일로부터 각 층에 해당하는 개별 RGB 버전을 생성한 것이다. 색상에 따른 이미지의 위상차는 오히려 각 색상의 층을 뚜렷하게 분리할 수 있는 힌트가 되었다. 색 보정 단계에서는 흰색의 가스파컬러 로고와 검은색의 눈동자를 기준으로 가장 원본에 가까운 색을 복원해 나갔다.
가스파컬러 복원 성공 사례는 이 방법론을 가스파컬러 필름이 아닌 일반 필름의 복원 과정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야노스 몰나르는 변색된 흑백 네거티브, 빛이 바랜 컬러 네거티브 필름 등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가스파컬러 복원 방식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실험의 성과를 설명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관객과의 대화


Q. 광고영상 등 홍보용 짧은 애니메이션 영상의 보존이나 아카이브는 구축이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A. 한태식/ 첫 TV CF인 문달부 선생의 1954년자 애니메이션은 오직 스토리보드만 한 장이 남아있다. 이후 광고물도 거의 보존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다. 흥미로운 사실은 <공명선거>(1961)라는 작자 미상의 문화영화에서 신동헌 감독의 인장이 뚜렷하게 발견된다는 점이다. 신동헌 감독의 광고 작업물이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 과제가 되어줄 것으로 생각한다.
A. 야노스 몰나르/ 귈라 막스카시가 제작한 광고영상은 대부분 국가의 명령을 받아 만들어졌기에 내용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귈라 막스카시는 광고로 사용된 부분의 뒷이야기나 앞부분을 별도로 제작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Q. 명암이나 색 대비 등 디지털 복원에 있어 국제적인 기준이 있는가. 각 나라의 문화적 정서나 스타일 등에 따라 복원의 지향점에 변화를 주는지도 궁금하다.
A. 조해원/ 특정한 기준을 삼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특히 셀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셀의 깨끗한 색감이 필름으로 옮겨지며 그레인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복원했을 때 필름의 질감은 살아나겠지만 애니메이터들은 그 룩을 선호하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때문에 국제아카이브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Film(FIAF))의가이드라인을 참고하고는 있지만 각국의 아카이브에서는 각자의 문화나 환경에 맞춘 기준을 활용하는 실정이다.
A. 야노스 몰나르/ 일반적인 필름 복원에서 발생하는 필름 그레인 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매체의 물리적 상태 등을 살펴본 후에 자체적으로 보정의 한계점을 설정해 작업에 임한다. 예를 들어 완전히 붉은색으로 물들어버린 포지티브 필름의 경우 원본을 유지하며 보정할 수 있는 최대 임계점을 판단하는 과정을 거친다.

Q. 매체의 경계가 무너져 내리는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A. 나호원/ ‘애니메이션이 무엇인가’에 대해 답하기는 사실 불가능하다. 하지만 ‘영화는 뭔가요?’라는 질문은 영화의 정의보다는 영화의 가치나 방향성에 관해 묻는 것이 아닐까. 그런 것처럼 필름이 사라진 후의 기술적 환경 속에서도 애니메이션은 아마 새로운 기술에 맞추어 변화하며 이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은 ‘필름이라는 몸을 통해 100년 남짓 잠시 존재하고 있는 상태’라고 주로 정리하는 편이다.
A. 한태식/ 사운드와 이미지를 구분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 디지털에서는 모두 같은 데이터 방식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남아있는 애니메이션만의 가치는 이제 없다고 본다. 사실 개인적으로 더욱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어째서 최근의 애니메이션이 감독으로 기억되지 않고 회사로 기억되는가?’라는 문제의식이다. 여전히 감독의 작가적 개성이 살아 숨 쉬는 애니메이션들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들이 가진 스타일과 힘이 지금 시대의 애니메이션을 다시 한번 들여다볼 수 있는 물질적인 토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