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능에 대한 자연주의적 묘사, 특유의 문어적 대사, 기괴한 미장센으로 유명한 김기영 감독은 한국영화사, 나아가 전세계 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독보적인 개성을 발휘한 감독 중 한 명으로 거론된다. 김기영은 1955년 데뷔 이래, 1980년대 초까지 기존의 한국영화와는 전혀 다른 30편 남짓의 영화를 선보였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물론 <하녀>(1960)일 것이다. 한 중산층 가정에 가정부로 들어온 여성과 불륜을 저지른 남성과 그 가족이 가정부에 의해 파괴되는, 그리고 가정부 역시 희생되는 이 영화는 한국영화 대표작을 뽑는 리스트에서 거의 항상 1, 2위에 오르는 한국영화사의 걸작 중 한 편이다. 이후 김기영 감독은 유사한 설정으로 <화녀>(1971), <충녀>(1972) 등 네 편의 리메이크 작을 만들었다. 최근 봉준호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품으로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거론함으로써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 혹은 대표 시리즈가 <하녀>(시리즈)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1963년 작 <고려장>은 어쩌면 <하녀>만큼이나 김기영의 독보적인 개성을 드러내는 대표작 중 하나다. 다만 이 영화는 오랜 기간 제대로 공개되지 못해 진면목이 가려져 있었다. 110분의 러닝타임 중 25분 분량의 이미지가 소실되어 사운드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25분의 분량은 여전히 소실된 상태이나, 한국영상자료원이 4K 화질로 복원한 판본이 2019년 6월, 볼로냐복원영화제에서 소개되면서 국내외 영화계에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래의 <고려장> 설화를 재해석한 이 영화는 한 빈곤한 마을을 무대로 벌어지는 35년 간의 처절한 이야기를 김기영 특유의 자연주의적 시각으로 담아낸다. 가혹한 굶주림 속에서 마을 주민들은 최소한의 인간성도 잃어버린 채 생존을 향한 본능만으로 살아가지만, 그 가운데 몇몇은 고귀한 희생을 감당한다. 영화는 이를 통해 본능의 세계에서 문명으로의 이동, 인간성의 회복의 순간을 포착한다. 그리하여 영화는 한국전쟁 후의 처참한 사회상을 투영하는 동시에, 새로운 출발을 향한 희망의 일단을 내비친다. 어머니 역을 맡은 1950-60년대 대표 배우 주증녀의 열연이 돋보인다.

이번 블루레이에 수록된 <고려장>은 2016년 한국영상자료원의 복원으로 재탄생한 판본이기도 하다. 2019년, 영상자료원은 1982년에 기증된 35mm 오리지널 필름으로부터 현존 최고 화질인 4K 해상도로 디지털 복원하였다. 원본 상태가 비교적 좋은 편이어서 상대적으로 만족스러운 품질의 복원이 가능했다. 기존에 DVD가 출시된 적이 있지만, 이번에 고화질로 복원된 블루레이 영상은 <고려장>이라는 영화의 가치를 완전히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5분의 이미지는 멸실되어, 사운드만 남아있다. 블루레이는 사운드만 남은 25분의 러닝타임을 자막과 함께 그대로 수록하였다.